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지난 덕터뷰에서 왜 작가님 작품의 먹들은 번지지 않을까? 질문을 남기고 마무리지었지. 우리 이최애는 먹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명히 물의 함량이 높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종이에 번지지 않을까? 그냥 에이포용지에 해도 번질 것 같은 재료인데 말야.
그건 바로 최애가 '이합지'를 쓰고 '아교반수'작업을 하기 때문이래. 이합지는 동양화 작가님들 작품 캡션에 종종 있었기 때문에 접해본 적이 있는 단어야. 종이를 두개로 붙이는거지! (전문성 떨어지는 저렴한 표현 너무 미안해 ㅎㅎㅎㅎㅎ) 그럼 아교반수는 대체 뭘까? 아교반수는 완전 새로운 단어지 않니? 이번 편을 읽고나면 이최애의 그림은 그냥 예쁜 그림이 아니라 이한정이라는 사람의 꼼꼼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 더해진 '작품'으로 느껴지게 될거야. 자! 이번 편 읽고 바로 콜렉터의 길로 가주아ㅏㅏㅏㅏ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이한정 편
유연한 탐색과 장인정신의 공존
아교반수(阿膠半水)
💬 엘덕후: 아.. 아교반수가 뭐에요???
아교반수는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 아교와 물을 섞어서 종이에 바르는 과정을 말해. 이걸 왜 하냐면, 먹이 너무 깊이 스며들면 색이 탁해지고, 반대로 너무 겉에만 남아있음녀 부자연스럽게 둥둥 떠 보이기 때문이래.
💬 이최애: 아교반수를 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작업 전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농도 조절을 잘못 하면 붓을 일단 한 점만 얹어봐도 아교가 안 된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바로 종이를 뜯어버려요. 제가 그릴 수 없는 종이니까요.
최애는 화판에 종이를 얹고 아교반수를 할 때 샘플 종이도 항상 옆에 두고 같이 아교반수를 한대. 그래서 샘플 종이에 테스트 했을 때 느낌이 잘 안나오면 화판에 붙인 종이도 다 떼어버린다고 해. 종이를 준비하고 바르고, 말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 이최애: 물론 한번에 여러 화판에 종이를 깔아놓고 아교반수를 공장처럼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성격상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또 한지는 특성상 공기에 오랫동안 노출이 되면 먹이 잘 안 먹혀요. 그래서 늘 종이를 말아서 비닐에 꽁꽁 싸서 보관을 해둬야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당연한 선택일 수 있지만, 그걸 진짜로 실천하느냐 마냐는 작가의 민감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지. 작은 디테일까지도 놓치지 않아서 본인 마음에 들어야만 세상에 내놓는 이최애의 이 자세가 작품의 퀄리티를 더 높여주는 것 아닐까?
밥 다 먹고 카페 와서 작업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종이
어떤 먹을 쓰는지, 화판에 종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나니 자연스럽게 종이가 무엇이냐까지 오게 되었어.
💬 이최애: 같은 지업사에서 종이를 사더라도 생산 시점에 따라 종이 성질이 또 다르더라구요. 대량생산을 해놓은 상태에서 제가 마음에 드는 종이를 발견해도, 그 생산량이 다 소진되고 나면 새로 제작을 하게 되겠죠? 그 다음에 만들어진 종이가 저한테 맞을거라는 보장이 없더라구요.
한 지업사에서 다른 지업사로 넘어가게 될 때는 아교반수를 얼마나 해야하는지 또 테스트 과정이 필요하대. 그래서 '내가 원하는 그 색감이 나올 것 같다' 싶으면 그 지업사 종이로 다시 작업을 시작한대.
💬 엘덕후: 어떻게 보면.. 빈티지의 세계 같아요. 작황이 안 좋으면 신 맛이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 와인을 오래 묵히면 색다른 맛있는 와인이 되고 하듯이요! 위스키 만들 때 조금씩 증발되는 걸 천사의 몫이라고 하듯이, 하늘이 만든 재료와 인간의 솜씨가 맞아야 마음에 드는 종이와 그림이 되는 구나 싶네요. (참고로 이거 내가 한 말 아니야 우리 커뮤니케이션팀장님이 한 말이야. 나이샤 팀장님..!)
물감
어느새 작가님과 다른 여러 작가님들이 함께 참여하시는 도로시살롱에서의 전시로 몸을 옮겨왔당!
동양화의 경우 색을 줄 때 '분채'라는 걸 많이 쓰더라구. 그래서 작가님도 분채를 쓰시냐고 여쭤보니 우리의 하이브리드 동양화 작가님의 대답 너무 쿨해!
💬 이최애: 저는 제가 내고자하는 색에 필요한 물감을 쓰는 편이에요. 분채를 가루로 갈아서 아교를 넣어서 정통으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튜브 물감도 많이 써요. 일반 회사에서 나오는 수채화 물감도 많이 써요. 왜냐면 동양화 물감은 요즘 다양하게 나오긴 하지만 채도가 조금은 낮을 수 밖에 없거든요.
살짝 탁한 느낌이 있는 동양화 물감을 수채화 물감이랑 섞어 쓰기도 하고, 깊이 있는 색감이 필요하면 동양화 물감을 더 많이 섞어서 쓴대.
💬 엘덕후: 아.. 이제 정말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작가님이 그린 동양화가 서양사람이 그린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색면꼴라쥬 같은 방식으로 표현돼서이기도 하고, 그 색면꼴라주를 잘 보여주려면 면을 표현하는데 유리한 서양 물감도 사용하게 되는거죠. 그러면서 현대적인, 어떻게보면 이국적인 한국화가 나오는거네요.
이최애의 동양화가 맑고 투명하면서도 은은해보이는 이유, 먹 + 종이(와 아교반수) + 물감의 삼중주였어. 아 드디어 이제 이해가 되네!!
다음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꼭 뭔가 정해지는 것을 하기 보다는 나에게 맞는 것을 해나가다보면 나의 색깔이 드러나게 마련인가봐. 우리 이최애, 한국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중국에서 정통 산수화를 공부했다가 본인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이 방법 저 방법 고민하다보니 '색면꼴라쥬'라는 본인만의 표현방식을 찾아냈잖아. 그 과정 속에서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을 벗어나서 본인에게 맞는 물감, 종이, 먹물 등을 사용하면서 점차로 발전해오고 있어.
그러나 늘 변하지 않았던 게 하나 있어. 자연이 주는 감정을 덩어리로 표현한다는 점이야. 그게 우리 최애가 가장 하고 싶은 작업의 중심인 것 같아. 그러다보니 여행에 대한 계획도 남달라.
💬 이최애: 지금은 제주도의 바람을 풀에서 느낄 수 있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국내가 제주도다보니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것 같아요. 내년 쯤에는 더 멀리, 더 큰 덩어리가 있는 몽골 여행을 계획하고 있구요. 그리고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북극이에요. 정말 빙하를 그려보고 싶거든요. 그리는 것도 그리는 거지만 진짜 눈으로 좀 보고 싶어요.
💬 엘덕후: 몽골도 다녀오시고, 북극도 제발 다녀와주세요. 그 덩어리들은 어떨지 너무너무 기대돼요!
💬 이최애: 맞아요. 북극에 다녀오면 정말 덩어리의 결정체가 나올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다 하얀데 경계선도 희미하잖아요?
정말 기대되는 이최애의 미래...! 한국이라는 촘촘한 덩어리들, 중국과 미국에서 본 거대한 덩어리들, 이제는 몽골과 북극으로 이어질 궁극의 덩어리까지 보겠어!
우리 이최애의 덕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해볼게. 최애가 여태까지 작업한 덩어리들이 궁금하다면, 아래 작품들을 둘러봐줘! 그리고 이걸 다 읽은 엘덕들아, 넌 이미 컬렉터의 길에 들어섰다고 봐야해!
모든 것을 품은 자연의 겹 - 두 개의 공간, 하나의 자연
작가 이한정의 회화는 자연의 단순함과 복잡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두 개의 이질적인 이념은 그러나 작품에 독특한 시적 분위기와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고요히 멈춰진 듯한 시간 속에 영겁(永劫)의 세월을 품어낸다, 작가는 대범한 면(面) 분 할과 이와는 상반되는 세밀한 디테일을 통해 컬러풀한 2차원적 관념과 무채색의 입체적인 변화무쌍을 병렬시킨다. 무한히 많은 사건을 담은 나무들, 그리고 이러한 나무들의 미시적 표현력을 굳건히 받치고 있는 정신의 명료한 지향성, 작가는 한 화면에 이 두 가지 자연의 사건을 과감히 통합한다. 한국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후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 수묵 산수화를 익힌 작가는 10년에 달하는 중국 체류 동안 자신만의 주제 의식과 스타일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가 중국 산천의 각기 다른 풍경을 직접 스케치하고, 그 다양한 자연의 심상을 수묵에 담으며 보았던 것은 생명의 분화와 성장 과정에 나타난 복잡계적 특이성이었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머물렀던 미국에서도 자연의 광활함과 복잡성은 작가의 주된 미학적 관심사였다. 첫눈에, 작가의 그림 속 나무와 그 군집은 자연 전체와 그 전체의 부분은 발생적으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를 가지게 되는 프랙탈(Fractal)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나무가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을 전제로 한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와 ‘자기 닮음’(self-similarity) 구조를 갖는다는 데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작가의 나무 이미지는 ‘나무-개별’의 일의성뿐만 아니라 ‘자연-총체’의 다의성을 향하며, 나무의 부분이 나무의 전제가 되고, 나무의 확산과 성장이 숲이 되고, 숲이 산이 되는 자연의 무한한 연쇄 과정을 보여주면서 ‘살아 있는 영원, 숨 쉬는 영원’의 느낌을 발산한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자연의 숨은 질서 속에 관념적으로 채색된 평면을 추가하여, 우리의 다채로운 판단과 사유를 작품에 개입시킨다. 자연의 원리와 그 앞에 선 우리의 자기반성(self-reflection)이 동시에 출현하면서, 작품은 전통 수묵화의 주름진 산천과 관념의 여백을 현대적으로 재탄생 시킨다.
- 이재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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