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3편에서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 질문들에 너른 마음으로 대답해 준 안최애의 회신을 읽다 보니 '가분한' 입맛, '온온한' 스타일링, '무해한' 컵라면, '0의' 칼로리와 같은... 너희 같은 엘덕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드립을 치고 왔는데 설마 나만 재밌고 나만 웃는 거 아니지..? (아 이런 게 아재특인가...?) 질문이 몇 개 없었는데 작가님의 답변을 읽고 사족을 덧붙이는 게 재밌어서 4편까지 후다닥 왔네. 너희도 같이 덕질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콧김이 쎄진다 흐흐흐.


이번 편은 글감을 다듬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 최애의 마음은 우주를 향할 만큼 거시적이고, 최애의 감사는 개미의 열심에도 머무르기 때문이야. 그 너른 스펙트럼을 짧은 글에 담으려다 보니 필력이 달리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지 뭐야. 그래도 최애의 고요한 생각들이 사이사이에 침윤하길 바라며 시작해볼게!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안소현 

크면서 섬세하고

작으면서 자유한 사람

우주속의 우주, 130.3x97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1

작업의 방향, 지구 온난화, 미술 불황, 삶, 죽음, 인간, 동물, 우주...

요즘은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위에 있는 소제목이야. 내가 여기서 최애와 공유하는 고민거리는 '작업(사업)의 방향, 지구온난화, 미술불황' 이 정도인 것 같아. 사업의 방향은 뭐... 고민하든 안 하든 늘 오리무중이긴하지만 올해 느껴지는 지구 온난화 진짜 끝판왕이었잖아? 미술 불황도 내 사업이랑 직결돼 있는 문제라 무시할 수 없고. 나는 피부에 와 닿고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러나 최애의 고민은? 삶, 죽음, 인간, 동물... 우주까지 간다.


그렇다면 최애의 행복은?


엘덕후: 요즘은 어디서 행복을 자주 느끼시나요?

안최애: 잠들기 전에 신랑이랑 농담이나 성대모사 같은 것을 하면서 깔깔 웃을 때,

신랑 차를 타고 이동할 때에 나는 늘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하는데 노래가 잘 될 때,

수영하는데 누군가 따봉 해주거나 강사님이 선수 같다고 해주실 때,

SNS에 그림 올렸을 때에 사람들이 좋다고 해줄 때(이게 제일 행복하고 행복감이 오래감),

강아지들이랑 산책하는 동안 10살 된 까미가 잘 따라올 때,

동물들이 행복해 보일 때,

매일 짓는 밥이 맛있게 잘 되고,

남편이 두 그릇 먹고 남은 게 없을 때.


삶(노래, 수영, 그림), 죽음(10살 된 까미 아직 젊지만 왠지 아이유도 생각나), 인간(남편, SNS, 따봉 날린 사람), 동물(강아지들, 까미, 행복한 동물들), 우주(빈 밥그릇?)

우주는 좀 어거지였다, 그치?


어떻든, 고민과 행복이 평행으로 놓인 듯한 최애의 답변을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읽고 또 읽으면서, 광폭의 우주 속에도 개화라는 미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 <우주속의 우주>가 최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크면서 섬세하고 작으면서 자유한 사람. 고민이 넓고 큰 만큼 생활 속 작은 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지점이 부럽더라고. 세상을 만지고 맡는 범위가 무한하면서도 본질은 가까이에 있다는 걸 만끽하기까지 하는 것 같아서.

손으로는 가을을, 눈으로는 겨울을

눈의 품, 100x72.7cm, Acrylic on canvas, 2020

엘덕후: 좋아하시는 계절이 있으신가요?

안최애: 풍경을 시각으로만 보면 사계절이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서 다 똑같이 좋아요. 촉각으로 느껴지는 걸로 생각해보면 저는 가을이 좋은 것 같아요. 가을 바람이 너무 좋아서! 촉각적으로 좋은 순서는 가을>봄>겨울>여름 입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할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 후훗(-_ -V) 그런데 좋아하는 계절과 그리고 싶은 계절이 같냐는 질문에는 조금 의외의 답변을 받게 되었어.


안최애: 겨울 그림이 가장 좋았어요. 언젠가는 제대로 전시해보고 싶은데, 겨울의 순백색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마음이 깨끗하고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최애가 워낙에 다양한 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그런걸까? 하얀색이 주는 만족감이 컸다니! 약 30년 전에 잡았던 붓이 마지막인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하얀 캔버스에 하얀색을 그리면 어떤 성취감도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세속적인 생각부터 드는데 말야. (게다가 하얀 옷 입은 날은 이상하게 밥 먹을 때마다 뭐 튀어서 피한다규! ㅠ_ㅠ) 그러고는 이런 말도 덧붙였어. 대문자 T는 미술천재의 겸손함에 오류가 나고 말았지.


안최애: 봄, 여름, 가을도 다 그려보았는데 생각보다 작업이 어려웠어요. 인내심이 필요하더라구요. 자연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워서 그림으로 다시 표현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고 자연만큼 아름답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자괴감도 들어요. ㅎㅎ

안소현의 작업노트

오늘도 산책길에 파릇한 논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왜가리를 보고, 죽은 벌레를 에워싼 개미 떼를 보고, 마른 땅 위로 머리를 내민 새싹을 보고, 열매를 물고 가는 새를 보고, 밤 하늘 달무리의 오색빛을 보고, 저 멀리서 들리는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헤아려 본다. 천연한 자연의 모든 것은 당연하면서도 신비롭고, 여리면서도 담대하고, 익숙하면서도 매우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눈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세계에 살고 있는 지금, 무엇이 더 필요할까. 자연과 우주가 건네는 온 기운에 꽉 찬 마음은 무엇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저 지금이 충만하고 감사하고 미안하며, 모든 것이 서로 무해하게 온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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