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우리 이제 김최애와의 마지막 이야기를 할 차례야. 인터뷰 내용을 톺아보기를 수 차례 하고서 드디어 마지막 편을 쓰기 시작하니까 김최애를 만난 날이 생각나.


나는 사실 이번 인터뷰를 빙자해서 (역시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ㅋㅋㅋ) 김최애의 얼굴을 처음 보는거였어. 물론 우리 팀 황엘덕은 작가님을 뵌 적이 있어서 좋은 분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메일로만 접한 우리 최애는 정중하지만 약간은 사무적인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온라인상에서 만난 김최애라는 인격과 김최애의 그림이 전해주는 느낌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생각도 했어! (오해하지는 마, 나 이런 사무적인 이메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야 히히)


그런데 (안 늦었으면서) 늦었다고, 죄송해요! 하며 베시시 웃으며 달려오는 김최애를 보자마자 완전 무장해제 됐었어. 인터뷰를 시작하고는 한 번 더 놀랐어. 감정을 전하는 방식이 이렇게 섬세할 줄은 몰랐던 거야. 살며시, 그렇지만 해맑게 다가와서 결국엔 마음을 꾹꾹 눌러 안아주는 사람. 그게 바로 김최애였고, 김최애는 그녀가 그린 그림 그 자체였어.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성하 마지막 

괜찮아, 오늘도 잘 하고 있어.

작품에 대해 성심을 다해 설명해주는 김최애 :)

당신만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해요.

김최애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 안에 본인의 감정을 담아서 작업한다고 했지? 근데 그 감정은 작품을 선보이고 누군가에게 떠나보냄으로써 ‘나만의 감정'이 아닌 '당신의 감정'이 돼. 그림은 결국 누군가에게로 떠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걸 ‘전시한다’는 느낌보단 ‘보내준다’는 감각에 더 가깝대.


💬 김최애: 제가 작업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진 않아요. 어떤 감정이 담겼는지는 저만 알고 있으면 되고, 그걸 보는 사람은 자기 해석대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김최애의 작품 중엔 〈무제 2025 #2 (이 작품명의 주인은, 바로 당신!)〉 같은 제목이 붙은 것도 있어. 이건 단순히 ‘제목을 넘긴다’는 제스처가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감정을 ‘해석할 권리’까지도 감상자에게 넘긴다는 의미야.

💬 김최애: 저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것들을 저처럼 느껴요. 제 분신처럼. 그런데 언젠가는 이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잖아요. 그때 제 감정을 너무 선명하게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거든요.

자신이 품고 있던 감정이 아주 진하게 녹아 있는 그림을 담담하게 타인에게 보내주면서, 그 사람의 해석 안에서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 이건 정말 예술가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심 어린 사람 간의 배려처럼 느껴졌어. 그림을 통해 “이런 감정을 느껴봐”가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이 그림 안에서 꺼내보길”이라는 태도.

정답이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추상화

그래서 김최애의 작품을 소장한 콜렉터들이 “그림 앞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이 정리된다”고 말하는 이유도, 단지 예뻐서나 감각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그림 안에 자기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여백’이 있기 때문이야. 


💬 김최애: 제가 직접 뭔가를 말하지 않아도, 그 그림을 본 사람이 자기 감정을 꺼내는 모습을 보면… 그게 참 신기해요. 전 말하지 않았는데, 그분은 말을 해요.

이 말은 내가 잊지 못할 것 같아. 그림이라는 조용한 매개체가 작가의 말을 대신하지 않고, 감상자의 말을 끌어내는 구조가 된다는 것. 그게 바로 김최애 그림이 가진 위로의 방식이야. 위로란 누군가의 감정을 내가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을 주는 일이라는 걸 우리 최애는 알고 있었어.

💬 김최애: 전시 중에 어떤 분이 제 그림 앞에서 고요히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으시면 말을 걸지 않고 함께 그림을 가만히 바라봐요. 그 분이 자신 안의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니까요.


그림은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 앞에 선 사람은 설명하지 않아도, 그 조용한 감정의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게 진짜 깊은 위로 아닐까? 그림을 그리고, 마무리하고, 떠나보내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김최애는 말하지 않아도 점점 단단해졌어. 자신의 감정은 온전히 담되, 그 감정을 보는 이의 것으로 다시 ‘환원’되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그래서, 이 사람의 그림이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거야. 위로는 결국 정답이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이고, 그림은 그 받아들임을 연습하게 해주는 도구니까.


💬 김최애: 제 그림이 꼭 하나의 의미로 규정될 필요는 없어요. 다만, 그 사람이 자기 감정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Epilogue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 혼자 지하철을 타고 조용히 앉아 있었어. 창밖 풍경은 빨리 지나가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멈춰 있는 느낌이랄까? 그림은 원래 그런 건가 봐. 보고 있는 순간보다, 보고 나서야 진짜 말이 시작되는 것. 김최애의 그림도 그랬어. 인터뷰를 끝내고, 목소리를 다 듣고, 편집까지 마쳤는데도 어딘가에서 계속 말을 거는 느낌. 말없이, 소리 없이, 하지만 분명하게. “괜찮아.” “그렇게 느껴도 돼.” “그 감정은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그림이 말을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림이 말을 안 하니까, 나도 내 마음을 조용히 꺼내볼 수 있었거든.


김최애의 다음이 기대돼. 지금처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어느 날 누군가의 마음속에 딱 한 점의 색깔로 남아 있는 사람이길.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너도, 잠깐 멈춰서 네 마음의 색 하나쯤 꺼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괜찮아. 오늘도 잘하고 있어.

김성하 Kim Sungha

이처럼, 내 안의 좋은 에너지가 색으로 표현되는 그 순간의 감사함이 내 존재 자체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니, 언제나 좋은 에너지를 담은 색의 언어를 표현하는 추상화 작업을 지속하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작품을 통해 소통하며 관람자 각자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사유해보는 삶의 순간-시간을 제공하여 미약하거나 건강하고 긍정적인 선순환의 통로로서 빛나는 내적 환기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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