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얘들아, 원래 덕터뷰의 기획의도는 온전히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에 있었는데 말이지. 하다보니까 내가 정말 성덕이 되어가는 거 같더라고. 이렇게 내 최애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하는 시간도 좋지만 최애가 한 말을 읽고 듣고 다시 쓰고 재편하면서 팬심이 더 강력해진다고 해얄까? 미술덕이 된다는 건 정말 빈털터리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인 것 같아! (꺄하하하하하ㅏㅎ하하하하하하ㅏ 흑)


드디어 김영진 마지막 덕터뷰를 쓰게 되었어. (최애의 표현을 빌리자면) 망나니처럼 살았던 청소년이 어머니의 조언을 듣고 앉아서 하는 일을 찾다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썰부터 시작해서,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목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기 플랜, 그리고 작품 가격 계산식을 고민하면서 채권 자산으로서 그림을 다루는 미술은행장으로서의 면모까지! 우린 정말 김최애의 다양한 면모를 공유해왔어. 오늘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최애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물론, 질문은 너도 궁금했고 나도 궁금했지만 남사시러워서 못 물어본 것 위주로 내가 총대멨어!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영진 편

수많은 꽃잎이 달린 저 연꽃처럼

스스로를 펼쳐서 보이는 것이라오.

평면에 쌓는 3차원의 바람작용

점으로 다 채우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이야기가 있는 풍경>

김최애의 작품은 점묘화라고 해야할까? 점묘화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조르주 쇠라'의 작품을 보면 점 자체로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여 그림을 완성하잖아. 면, 선이 아니라 점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것을 점묘법이라고 부르는 듯해. 이번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최애의 점이라는 건 면과 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의 중첩, 호흡의 흐름을 시각화 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색을 표현하기 위한 점이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점'이라는 소재로 치환한 것이지!


엘덕후: 저는 그냥 이거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요. 제가 시계열적으로 작가님의 모든 작품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초기에 점으로 채우지 않은 작품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매형들의 꿈>이나 <이야기가 있는 풍경> 시리즈요. 그런 스타일에서 점을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넘어가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김최애: 전에 그렸던 풍경 작품들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위주로, 정말 '망나니'처럼 살았던 그 때 그 시절의 모습을 그렸던 거예요. 그 이후로는 산책하면서 봤던 식물들을 에스키스 하다가 점을 적용하게 됐어요. 산을 오르게 되면 숨을 가쁘게 쉬게 되잖아요. (후하후하 열심히 시범을 보이는 김최애!) 이렇게 가쁜 호흡 같은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점을 쓰게 된 부분이 있어요. 또 멀리 보이는 산들이 점점 파랗게 보이는 게 공기층들이 쌓여서 그런 거거든요. 그런 모습들을 나만의 평면에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 점 하나가 그냥 공기 에너지, 숨 덩어리라고 생각을 하고 다 메꿔보자 해서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된 거예요.

엘덕후: 제가 지금 들으면서는, 점들이 약간 자기장 같아요. 어떤 물성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파동 이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김최애: 그쵸. 식물 뿐만 아니고 생명체라고 하는 유기물들은 그게 꼭 필요한 거더라구요. 바람작용이요. 바람이 들어가야지 열이 나는 거니까요. 공기 에너지를 그냥 어떻게 그려볼까 하다가 찾은 방법이었던 거죠. 같은 이유로 마블링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하게 됐어요. 초반에는 배경에 마블링을 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림이 뭔가 심심하더라고요. 어느 날 ‘어차피 내가 색 다 쓰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건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색을 다 쓰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되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더라. 최애의 그림을 찬찬히 뜯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 캔버스 위에 얼마나 겹겹이 색이 겹쳐 있는지. 인스타에 올리는 Work in progress 영상들도 '저, 저기요...? 그림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신다구요...?'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마블링에 끝나지 않고 점으로 메우다 보니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서 보면 볼 수록 더 보게 되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김최애의 콜렉터들은 한 그림을 오래도록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듯!

그림 앞에 5초만 있어주세요

abyss of time(The Prophet), 121.2cm x 242.4cm, 캔버스에 아크릴, 2017(가로)

김최애: 제가 책을 보다 보면 좋아하는 문구들을 적어 놓는데, 그 문구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있어요. 캔버스에 문구를 쭉 써 놓고 그 위에 패턴 문양을 넣어서 점으로 다 가려 본 거죠.

엘덕후: 어 우리랑 계약하신 작품 중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때는 바야흐로 엘디프가 판교에서 꼬꼬마 시절을 보내던 2018년. 최애에게 용기내어 DM을 보냈는데 감사하게도 계약이 진행되게 된거야. 그 때 에디션 계약했던(지금은 단종된!) 작품들이 위에 있는 abyss of time 이라는 작품이야. 이 작품이 '마블링 위에 점을 올린' 스타일을 구현해 낸 초기작인거지. 다시 그림 잘 봐봐. 이런 글들이 적혀 있어. 왼쪽 상단 첫번째 그림에는 "자아를 아는 것에 대하여 남자가 물어보았다. 자아를 아는 것이란 무엇인지 말해주십시오." 하단 왼쪽에서 세 번째 그림에는 답처럼 적혀있어. "수많은 꽃잎이 달린 저 연꽃처럼 스스로를 펼쳐서 보이는 것이라오."


김최애: 네, 초기 작품에 있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페어장에 오면 한 그림을 5초도 안 보고 그냥 걸어다니면서 보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는 제 그림 앞에 누군가가 5초 동안 서 있게 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5초가 생각보다 되게 긴거죠. 그런데 이렇게 글씨를 숨겨서 작업을 하니까 5초 이상 계시더라구요. 뭔가 읽히니까 멈춰 서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5초를 확보하는 경험을 통해 지금의 작업방식으로 개발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초기작처럼 문구를 표현하는 작업 방식은 효율성이 너무 떨어져서 지금 하긴 조금 힘들지만 나중에는 꼭 다시 하고 싶어요.


그림 앞에 5초만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문구를 넣었던 것이 시작이 되어서 지금의 스타일을 완성한 거라니. 왠지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진 어린 최애의 모습이 상상이 가서 괜히 짠해지더라.

정말 사소하지만 늘 궁금했던 마지막 질문

나 인터뷰 내내 너무 처웃어서 사진이 다 이모냥이더라. 성덕 등극의 기쁨이라고 해두자!

나 맨 마지막으로 엄청 바보같지만... 그 동안 정말 궁금했던 질문도 해보았어 후헤헤헤헤헤헤


엘덕후: 엄청 공들여서 다 그렸는데 실수하면 어떡해요?

김최애: 그냥 지우면 돼요. 마르기 전에 스윽 지워요.


뭐야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하기야?


김최애: 그런데 가끔 옷에 쓸려서 대규모로 실수한 경우에는 다시 덮어요. 제 작품은 커버업이 가능해요. 100호나 200호 같이 큰 작업 할 때는 가끔 점이 2~3번 찍힌 데도 있어요. 그런데 원래 제 작업 마지막 부분에는 채도나 명도를 맞추는 과정이 있거든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한 반나절 이상 그냥 커피 마시면서 하루 종일 그림을 봐요. 그 때 색감 조절을 조금씩 하죠. 저 노란색이 옆에 색이랑 밸런스가 쪼끔 안 맞는데? 싶으면 색을 바꾸는 경우들도 있고 명도만 좀 다운시키는 경우들도 있고 그런 식이에요. 그 시간에 커피 타 놓고 쉬면서 혼자 노는 것처럼 색감을 맞추며 수정해요.


얘들아. 내 최애가 참 이렇다. 실수는 덮으면 되는 거고, 작업 마무리 전에 최종 검수할 때도 '쉰다, 논다' 이런 말 쓴다. 위에서 마블링이, 점이, 문구가 어쩌고 힘들어서 다시 못한다 해놓고 말야! 어쩌겠니, 그게 내 최애, 아니 이제는 우리의 최애, 김최애 인것을!

투머치토커는

마무리에 취약하지.

<도원의 꽃> 시리즈에 연꽃이 있는 것에 착안해서 덕터뷰 김영진 편 중간 중간에 유연불삽(柔軟不澁), 개부구족(開敷具足), 이제염오(離諸染汚) 이런 연꽃 관련 사자성어를 소제목으로 붙여 오고 있었는데, abyss of time 속에 쓰여진 "수많은 꽃잎이 달린 저 연꽃처럼 스스로를 펼쳐서 보이는 것이라오."라는 문구를 읽고는, 정말 김최애는 연꽃처럼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펼쳐 보이고 있구나 싶었어. 김최애 안에는 예쁜 꽃잎도 있고, 빳빳한 이파리도 있고, 못 바닥까지 묵직하게 내려가 있는 뿌리도 있는데 그 모든 모습이 김최애였던거야.


근데 이 긴 대장정을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하지? 내가 자타공인 투머치토커라서 꼭 이 말은 꼭 해주고 가야겠어! 내 최애 홍보 마지막으로 제대로 해야되니까 이건 듣고가.


엘디프에서 9월 20일부터 <엘디프 오리지널> 2주년 행사 중인데 김최애를 비롯한 내 최애 세 분의 작품을 큐레이션 했다. 한 달 동안 대한민국 내에서는 배송비 무료야. 엘디프 홈페이지에서 사면 작품 가격의 무려 70%를 김최애한테 분배해. 화랑가가 작품가격의 50%인거 알고 있지? 우리 예술공정거래 플랫폼이거덩. 그래서 일반 화랑보다 좀 더 높은 비율로 작가에게 분배하고 있어. 지금까지 읽고서 김최애 팬 안 됐을 사람 없을 거 같고, 김최애 그림 좋은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동안 사고 싶었던 김최애 그림 있었으면 엘디프에서 사.


어우, 딱 까놓고 엘디프에서 사라고 하니까 나 지금 엄청 속시원해! 진짜 간다!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영진 편 끝.

평론 - 희망을 담은 ‘이야기 그림’ 연작들

김영진의 작품들이 자연을 머금은 까닭은 동·서양의 구분이 없는 사유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작에서 발견되는 꽃상여는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 어린 시절의 서사와 연결됐음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삶과 죽음도 하나의 축제처럼 관찰된다는 것, 주제와 대상이 역전된 풍경 속에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한다. 항상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떠난 이의 기억, 가족들을 지켜주는 듯한 바람은 들풀을 민화같은 패턴에 더한 <자유소생도>에서 발견되는 뿌리까지 그려넣은 식물작업들과도 연결된다. 모성애적 가정을 뜻하는 ‘백자 달항아리’, 동심의 환유를 뜻하는 ‘하얀색의 대문’, 시골풍경이 도시의 삶으로 이어진 경험들 속에서 ‘허밍가든 시리즈’가 ‘도원의 꽃’처럼 되살아난 것이다. <자유소생도>(120여가지의 색상)를 제작하다 남은 물감을 캔버스에 바르다가 탄생한 <허밍가든 시리즈>는 동네 산책길에 발견한 ‘진흙 속 연꽃’처럼 수많은 점묘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찾았다. 작가 김영진은 맑고 밝은 사람이다. 주변의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여러 삶 속에서도 오로지 남은 것은 ‘그림 그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건 인생을 나누는 것. 나의 인생을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을 나에게.” (2021년 11월 27일 노트) <도원의 꽃 42>를 그리면서 남긴 흔적 속에는 ‘아내-가족-그리움-우리 모두의 사랑’이라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미술이 우리의 정신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도구이자, 가장 적극적인 소통의 언어라고 말한다. 생활하며 피부로 느낀 세상을 주제로 삼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동화 같은 유토피아 세계와 만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의 아픔을 넘어 현재와 미래 사이를 연결해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힘을, 삶 속의 기억들을 작품에 담아 감상자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작가의 흔적들 사이로 ‘아픔마저 끌어안는 용기’가 보인다. “나는 나에게 온 파랑새가 달에서 보내준 선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2023년 5월 3일 노트) “별이 피고 빛나는 꽃 사이로 노래하는 하늘은 파랑새와 춤을 춥니다.”(2023년 5월 4일 노트) 작가에게 파랑새는 우리 모두를 향한 희망의 서사이자, 작업하는 자신을 향한 따스한 동심의 메시지가 아닐까. 


- 안정현(미술 평론가, 예술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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