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드디어 대망의 덕터뷰 최승윤 편을 시작하게 되었어! Hooray! 조정은&최승윤 편 >> 조정은 편 >> 최승윤 편을 쓰기로 계획을 짠 이유는 단 하나야. 최최애의 작품 세계를 내가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필력이 부족하여 미루고 미룬 것이지 (내 필명 양벼락 된 이유 = 어려운 건 데드라인까지 미룬다 ㅋㅋㅋㅋ)
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야기 해보자면, 최최애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스텔라' 시청이 필수야. 그리고 블랙홀에서 시공간 왜곡이 일어난다는 점, 사건의 지평선을 넘으면 외부와의 정보 교환이 불가능 하다는 점, 일반 상대성 이론만으로는 블랙홀 내부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 양자 역학과 통합이 필요하다..는....점... 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어. 내가 문과긴 하지만 어떻게든 잘 전해볼게! 문송하지만 내 손을 놓지는 말아줘!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최승윤 1편
최승윤의 우주는 '역설'이다.
우리는 무엇과 코드가 맞는가?
화려함의 단면-2017-17, Oil on canvas, 160x64cm, 2017
💬 엘덕후: 사실 저는 작가님 작품을 보면 늘 추상적이면서도 정형을 거부하는,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듬이 잘 잡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게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늘 궁금했거든요. 원래부터 추상적인 작업을 하신 건가요?
🔵 최최애: 사실은 굉장히 평범한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배우가 대사를 치면 재미있는데 내가 하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저 사람하고 나하고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왜 저 사람은 잘하고 나는 못할까, 이런 고민이었죠. 근데 그게 인간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분명한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너목보(tvN 너의 목소리가 보여)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한 소절만 들어도 이 사람이 진짜 실력자인지 아닌지 알잖아요. 그 찰나의 소리를 컴퓨터로 분석하면 약간의 차이거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처럼 나올 수도 있는데, 인간은 귀신같이 알아차리죠.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걸.
💬 엘덕후: 그러니까 작가님은 '인간은 그 미세한 차이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가는 거네요. 과학적으로 설명은 안 되지만 인간이기에 그냥 알아차린다는 거죠.
🔵 최최애: 그렇죠. 그래서 저는 고민을 이어갔어요. 인간은 왜 그런 것에 반응하고, 왜 좋아하고, 왜 따라갈까. 그러다가 저는 인간이 컴퓨터 속에 있는 하나의 코드라고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렇게 보니까 조금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어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쿠퍼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머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잖아요. 그런데 왜 미래의 인간들은 굳이 쿠퍼를 통해서 머피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을까요? 저는 거기서 이렇게 답을 내렸어요. 머피와 쿠퍼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코드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라고요. 인간은 코드이고, 하나의 코드로 묶여 있는 사람들끼리는 시공간을 초월해서도 반응하고 연결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본 거예요.
최최애가 말한 '코드'라는 건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작동하는 어떤 패턴, 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진동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하염없이 임장을 다니다가 '어, 이 집이다!'라면서 나를 울리는 직감, 합주를 하다가 기가 막히게 화음이 맞아떨어지는 짜릿한 순간이 바로 그 코드가 맞았을 때의 반응인 거지.
쓰여져 있지 않은, 무한한 정보를 담은 '점'
진지하게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최애. 이렇게 깊은 철학이 깔려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
🔵 최최애: 거기서 더 생각을 밀고 나가다 보니까 블랙홀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왜냐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건ㅡ쿠퍼가 머피에게 인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 가르강튀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ㅡ결국 블랙홀을 통과해야 하는 건데, 블랙홀 안에 들어가서 만난 '테서렉트'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순간이 동시에 펼쳐져 있는 곳이었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블랙홀이라는 것이 시간이라는 개념과는 상관없이 모든 정보가 압축돼 있는 하나의 '점' 상태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기서 잠깐! 인터스텔라에서 SF적 상상력을 더해 만든 블랙홀 속의 '테서렉트'라는 공간이 최최애가 말하는 '블랙홀'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거야. 최최애의 블랙홀은 모든 정보가 몰려있는 테서랙트이면서도 블랙홀 안에 있기 때문에 엄청난 중력으로 인해 압축된 '하나의 점'의 형태를 갖고 있는거지. 최최애의 작품속에서 그려지는 '점'이기도 하고, 조정은&최승윤 3편에서 다뤘던 '점'의 의미와도 같아.
🔵 최최애: 마치 게임 CD 안에 모든 데이터가 다 들어있고 그걸 읽어야 게임이 실행되는 것처럼요. 저는 인간의 삶도 이미 블랙홀에 다 쓰여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건 결국 그 CD를 읽어내는 과정이죠. 이미 적혀 있는 정보를 읽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우리는 이미 블랙홀 속에 있는 거고, 그 안에서 자신과 맞는 코드가 있으면 거기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게 된거에요. 중력이 작용하듯이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코드'를 추상화로 표현하다.
잠깐의 멈칫거림도 그림을 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즉흥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작업을 하는 최최애!
🔵 최최애: 네, 복잡한 것 같아도 아주 단순한 거예요. 인간이나 세상의 모든 입자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딘가에 마음을 붙이려 하고, 핫한 곳을 쫓아가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핫한 코드'를 따라가는 거예요. 그게 중력과 비슷해요. 더 강한 게 있으면 거기에 붙는 거죠. 그 '핫하다'라는 걸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아요. 저는 인간이 '잘 한다 못 한다'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그 힘이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그 힘을 더 강하게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요.
💬 엘덕후: 결국 인간은 불안 때문에 끌려가고, 끌림이 생기면 밀도가 만들어지고, 밀도가 만들어지면 중심이 생긴다. 예술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핫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강력한 끌림이 발생한다는 말씀이네요. 작가님의 작품이 비정형적인 것이 '세상의 모든 입자는 불안하다'를 표현하는 것 같고, 그렇지만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오 대박!' 하는 순간이 바로 코드가 맞는 순간인거겠어요.
🔵 최최애: 맞아요. 그것이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어떤 걸 보고 “저게 예술이다”라고 하는 순간은, 그 안에서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끼기 때문이죠. 저 사람은 연기에 재능이 있구나, 저 사람은 노래에 재능이 있구나 바로 알아차리잖아요. 그림도 그래요. 좋은 그림은 딱 보이거든요.
💬 엘덕후: 그 본능적인 감각은 참 설명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누구나 갖고 있는 거네요. 우리가 축구를 못해도, 누가 축구를 잘하는지는 바로 알아보는 것처럼요.
🔵 최최애: 그렇죠. 그 코드가 있느냐 없느냐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을 만드는거에요. 한 끗 차이지만 어마어마한 갭이 존재하죠. 저의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도 순간 머뭇거리거나 어색함이 끼어들면 그림의 균형이 다 깨져버려요. 그 작은 차이가 제 그림의 전부를 무너뜨릴 수 있어요.
최승윤의 작가 노트
세상의 시작은 물질적인 시작은 아니었다. 물질이 폭발해서 지금의 우주가 생겨났다면 그 물질이 존재하기 전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의 시작 전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無 ’가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개념은 반대인 ‘有’의 개념이 있어야만 존재가 가능하다. 반대로 ‘有’가 없다면 ‘無’도 있을 수 없다. 이는 당연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인 관계인데, 이러한 개념적인 역설을 풀지 못해 세상은 깨어진 균형 속에 태어났고 현재까지도 이 개념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세상은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
팽창 중인 우리의 현실은 두께가 없는 ‘완벽한 평면’ 속에 존재한다. 無와 有사이에는 서로를 대립하기 위한 개념적으로 가장 완벽한 평면이 존재하는 데 그 안에 실존할 수도 있고 허상일지 알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존재한다. 사실 극우와 극좌는 한끝차이고 생과 사는 같은 것이듯 無와 有는 서로 반대지만 본질을 같이 한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반대의 성질이 합쳐진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밀려고 해도 균형은 다시 맞춰지려 한다. 마치 시소처럼 찰나의 순간에만 균형이 맞게 되는데 그 잠시가 탄생의 시발점이 된다.
때문에 우리 세상은 ‘역설’에서 시작해 ‘역설’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 생명을 탄생시키고, 암흑 공간 속에 불타는 항성이 있고 그 사이 절묘한 위치에 있는 행성만 생명을 만들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육체와 만질 수 없는 정신이 만나 인간을 이룬다. 생과 사는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잠(간접적 죽음)을 자며 삶과 죽음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내 그림은 이러한 세상의 질서를 담고 있다. 역설의 균열에서 시작된 그림은 균열을 메우기 위해 확장되고 자신이 영원할 것처럼 생명력을 뽐낸다. 하지만 탄생은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림을 나는 정지시키려 한다. 그 정지의 느낌이 완성됐을 때,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정지와 활동의 느낌을 동시에 담은 역설의 존재가 되며 다시 생명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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