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여름 휴가 잘들 보내고 있어? 바로 직전에 쓴 글에서 내가 군산 선유도에 다녀왔다고 했잖아? 그 날 아들이랑 너무 신나게 놀아서 어깨랑 팔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까매졌고 이제 껍질도 떨어지고 있어. 그런데 어제 어린이집에 애들 하원하러 가니까 담임샘께서 내 어깨를 보시더니 "어머님 혹시 야외에서 일하세요???" 이러시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주말 동안 바닷가 가서 신나게 놀았는데 애들은 왜 안 탔냐면.. 두서없이 주절주절 설명해 드리는데 뭔가 너무 놀라신 토끼눈이 하루종일 생각나더라ㅋㅋㅋ큐ㅠㅠㅠ 엄청 까맣긴 해... 흑


오늘은 내 창업 초반기 이야기를 좀 적어볼까 해. 창업 이야기를 한 번도 시계열적 순서에 맞춰서 쓴 적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앞뒤 안 맞추고 그냥 생각나는 부분만 쓸 거야. 창업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모험적이지도 않고 혁신적이지도 않아서 좋은 본보기 따위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제일 즐겁게 하는 '게임'과도 같은 이 작은 사업을 어쩌다가 이렇게 오랜 기간 할 수 있었나 톺아보다 보니 창업 초기 생각이 안 날 수 없더라.


일단 적기 시작하면 뭐라도 적어지겠지. 가자!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9

벼락 퇴사

조직 부적응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퇴사를 해서였어. 퇴사를 한 건, 회사가 너무 싫어서였고. 근데 퇴사와 회사가 너무 싫음 사이에 '두려움'이 커서 몇 개월 동안 고민이 많았어. 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직장으로 이직한 지 네 달쯤 되니까 '어라, 이거 뭐지?' 싶었지만 또 다른 이직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냥 회사라는 조직에 날 맞춰서 살아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 같아.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어딜 이직 해도 웬만한 회사는 다 그런 식으로 살아야 될 것 같더라고. 아마 내가 공공기관, 교육기관, 시청 산하 재단 같은 안정적이지만 유동적이지도 않은 집단에만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나 스스로는 사회가 제공하는 시스템에 나를 잘 끼워 맞춰서 살 수 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 자체가 담당하는 일의 범위가 창발적으로 뻗어나가는 성격이 아니고 빈틈 없이 관리하는 종류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답답해지고 출근길이 너무 괴롭더라고. 나름 꼼꼼하고 관리자 성향이 되게 강한데도 넓고 얕은 새로움 없이 깊고 쫀쫀하게 관리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


회사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 대부분 직원 분들께서는 그 직장을 오래도록 다니면서 승진도 하고 학위를 병행하기도 하고 해외 파견도 종종 있는 좋은 회사였어. 다만 내가 있는 직군이나 내 전공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 같았어(대부분 공대 베이스인데 나는 법대 베이스). 게다가 내가 잘 한다고 해서 연봉이 올라가거나 직급이 높아지는 구조가 아니라서 '이걸 잘 하면 무엇이 좋은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업무 능력을 말로 인정받을 때는 잠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꼭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컸지(하여간 생각이 많으면 안 돼.) 어떤 사람들은 사기업에 비해 일거리가 많지 않은 회사이니 편하게 다니면서 취미 생활이나 박사 과정 등 부가적인 활동을 통해서 커리어를 넓혀가라고 말했는데 나는... 나는 뭘 해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사람이라 일단 엄청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할 수록 한계효용이 떨어지는 느낌에 고민은 더 커졌어.

남편의 가스라이팅

근데 내가 회사를 그만 두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우리 남편의 가스라이팅(?)이야. 우리 남편은 몇 개월 동안 내 귀에 인이 박히도록 말했어.


" 넌 일을 벌리면서 다녀야 되는 성격이다, 유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계속 불만이 쌓일 거다, 너한테 어울리는 직업은 컨설팅이나 사업이다, 사업을 하면 잘 할 것이다, 인생에 기회가 언제나 오는 게 아니다 지금 본인(남편)이 돈을 벌고 있고 아이도 없는 상태에서 모험을 해보는 게 좋을 거다, 나이 들어서 가진 게 더 많아지고 아이가 생기고 책임이 많아진 상황에서 모험은 더 어려워진다, 지금이다! "


남편 본인이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한테 저렇게 이야기 하니까 처음에는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벌고 있으니까 본인이 조금 마음 편히 사업을 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은 안 드나?'하는 생각이 들었지. 동시에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고 하루하루 잠도 잘 못 자면서 일하는 사람이 나보고 사업을 하라고 하다니. 남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 와이프한테?' 하는 생각도 들었어(엇, 나를 일부러 고생 시키려고 한 큰 그림이었나?) 결국 남편 말처럼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늘은 사표 낸다, 오늘은 사표 낸다! 하다가 어느 날 정말 냈고, 당시 팀장님이 '아 나는 이 사표 못 받아요, 양연구원 이러지 마.' 하시기에 삐쭉삐쭉 뿌잉뿌잉 주섬주섬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를 두어 번 반복했지.

조보아님 닮은 조주임님

그러다가 하루는 갑자기 너무 확신에 차서 '반려를 반려한다!'하는 마음으로 이메일로 사의 표명하고(사표 낸 시점, 사의 명확히 표현했다 등에 대한 증거도 남길 겸 또 삐죽거리면서 돌아오는 과정을 안 하려고) 이메일에 퇴사 날짜도 박아버리고 남은 휴가 다 끌어 당겨서 휴가계도 다 올려버린 후에 마지막으로 사표를 인쇄해서 결재서류 파일에 담아 팀장님 책상 위에 올려놨고 난 그렇게 10개월 만에 새로운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어.


약 3주 간의 실랑이를 마치고 나의 퇴사를 축하(?)하기 위한 팀회식이 열렸어. 모든 선배 및 상사분들께서 "그래도 1년은 다니지", "밖에 나가면 힘들다", "나가서 뭐 할거냐" 라고 걱정해주셨어. 나도 별 계획 없이 퇴사하는 거였고 다 맞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후련함이 커서 싱글벙글 웃어댔어. 그런데 단 한 사람, 내가 되게 좋아했던 (배우 조보아님 너무 닮은 데다 같은 조씨라서 혹시 조보아랑 사촌관계 아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는) 조주임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건배해주었어.


"나는 양연구원이 회사를 나가도 아주 잘 할 것 같아요. 멋진 결정 응원해요!"

벼락 게임

철 없이 놀았던 두 달

퇴사 시점이 11월 초가 되면서 나는 12월까지는 미친 듯이 놀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단다. 지금 아니면 언제 노냐! 싶었던 것이지. 사실 틈틈이 놀긴 하지만 두 달 내리 논 적은 대학교 여름방학, 겨울방학 말고는 아예 없었으니까. 무엇을 놀까 하다가 - 오랜만에 게임이란 걸 해보기로 했어.


초등학생 때는 알라딘과 Fox, 3D 테트리스를, 중학생 때는 천리안에서 채팅창을 이용해 하는 '신의 손'이라는 게임을 정말 좋아했는데(어머 내 나이 무엇) 한 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오질 못했고 우리 아버지도 '게임을 열심히 하면 집중력이 생긴다!'라는 오픈마인드셨기에 내가 게임하는 것을 한 번도 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었어. 그런 아버지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전화요금이 폭탄이 되도록 게임을 하기도 했었지. (그 시절에는 모뎀이라는 걸 사용해서 인터넷을 했거든. 아 그리운 90s!) 심지어 중학교 때는 '신의손'이라는 게임이 어찌나 유행이었는지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 타자 빨리치기 대회를 열었고 나는 무려 전교 3등으로 입상했었어. (1등과 2등이 같의 신의손을 미친듯이 달리던 정모군 한모군이었던 것도 기억나네? 근데 나랑 달리 걔넨 공부도 전교권이었음.) 슬프게도 그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교권으로 놀아 본(?) 경험이었어. 아무 방해 없이 게임만 주구장창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나의 절제력이 이렇게 없다는 걸 아주 빨리 깨닫게 된 것 같아. 그래서 그 이후로 게임이란 것은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어. 그러나 Big event of my life를 야심 차게 수놓기 위해, 그리고 한 해의 시작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사업을 시작해보겠다는 벼락치기 근성으로, 나는 롤을 깔았지.


나의 롤 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형편 없었..... 밤을 새워 롤을 해도 실력이 늘질 않았..... 지만 진심으로 롤이 너무 재밌더라고. 하루에 잠을 5시간 정도만 자면서 롤을 엄청 열심히 했어. 그러다보니 새벽 6시, 아침 7시에 잠들고 11시 즈음 느즈막히 일어나서 라면 끓여먹고 또 롤 하고 그런 두 달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러길 잘 했어. 세상에 게임을 하기 위해 밤 샌 게 몇 년 만인지!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고 약 15년이 흐른 후 철부지가 된 기분에 묘하게 무서우면서도 재밌었어. 그렇지만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 점점 무게감으로 다가왔고, 회사 이름이 찍힌 명함이 내게 부여해주었던 정체성, 소속감과 같은 사회적 힘이 이제는 없어진, 세상에 홀로 서 있는 통나무가 바로 나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어. 그렇게 12월 31일에 마지막으로 롤 한 판 때린 후에 컴퓨터에서 삭제했어. 중간 중간 너무 다시 깔고 싶었지만 컴맹인데다 컴퓨터 관련해서 뭐 하는 걸 굉장히 귀찮아해서 다시 할 수 없었어. 남편이 '다시 깔아줄까? 게임 하면서도 일 잘 하면 되잖아~' 하며 달콤하게 유혹했지만 '난 롤 아무리 해도 실력이 안 늘어서 시간 낭비야ㅠ' 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너무 빠르게 인정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게임이란 걸 정말 안했어. (그러다 임신이라는 또 다른 Big event가 생기니 문명이란 것에 손을 대기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소심해서 마냥 놀지도 못함

그래도 마냥 놀기는 좀 그랬는지 롤을 하던 전후로는 '무슨 사업을 할 건가?'라는 생각은 여러가지 해보았어. 일단 나는 중국 지식재산권법 중에서도 상표법과 저작권법의 충돌이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써서 지식재산 관련해서 관심이 많은 상태였어. 그런데 지식재산에서 제대로 하려면 변리사가 되어야 하는데, 내게 변리사가 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거든.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저작권'이라는 것에 포커싱이 되었지. 또 저작권을 법률로 풀어가면 변리사는 물론 변호사랑도 경쟁을 해야하는데 나는 승산 없는 일은 웬만해선 안 하는 쫄보라서... 자동 패스했지. 전문지식을 이용해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권리를 활용해서 사업화하는 분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어. 저작권 사업인거지.


흠 그렇다면 저작권이 다루는 분야가 뭐가 있나. 찬찬히 기억해내니 출판, 음악, 미술,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것들이 생각났어. 소프트웨어는 컴맹이니까 치우고, 출판이랑 음악은 너무 시스템이 잘 조직되어 있어서 사업화 하기가 힘들 것 같았어. 그나마 느슨하게 얽혀있는 것 같은 미술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원화를 파는 갤러리보다는 이미 있는 그림들의 저작권을 활용해서 내가 제작과 판매를 맡고 저작권료를 분배하면 좋을 것 같았어. 그런데 여기서 바로 엘디프로 이어진 건 아니야.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지 못하다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러 회사들 다니면서 인쇄소랑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차 저작물 자체를 그대로 활용해서 포스터로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


이 결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올 줄 누가 알았어?

돌고돌아 벼락치기

브런치를 시작할 때 '양벼락'이라는 작가명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작가명이 생겨난 이유는 나 늘 벼락치듯 일을 저지르고 해치우고 지쳐 쓰러져서 그렇거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할 때 어떤 계획으로 브런치를 이용할거냐는 질문에 '내 인생 전반에 걸친 벼락치기를 시리즈로 작업하겠다'고 말만 거창하게 했다지. 아무튼 그래서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벼락치기 시리즈는 '창업도 벼락치기', '임신도 벼락치기', '출산도 벼락치기', '육아도 벼락치기', '결혼도 벼락치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창업도 벼락치기는 아예 시작도 못했었어. 출산벼락은 약 한 달 정도의 일을 담은 거였기 때문에 빨리 끝낼 수 있었고, 임신벼락/육아벼락은 쓰다가 뒷전이 되었지(역시 나는 양벼락이여!)


아무튼 지금 이번 덕업일치를 내용을 쓰다 보니 내 인생 중 7-8년을 다루는 내용이라서 도저히 짧게 써지지 않을 거 같네. 처음에 쓰기 시작할 땐 쓰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결국 돌고돌아 처음으로 왔구나. 그래 이참에 이 시리즈 시작해보고, 벼락치지만 말고 끝도 내보자. 내가 투머치토커라서 늘 글이 늘어지곤 하니 퇴사편, 사업구상편 과 같이 편권을 나눌 것 같은데, 여기서 '편'자는 '퍼즐 조각'을 모으는 느낌으로 '조각 片'를 써보겠어. 역시나 시계열적으로 안 쓰게 될 거 같아서 말이지.

진솔 - Waterdrop 모빌

덕업일치 Issue No.9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엘디프 소속 진솔 작가의 <Waterdrop>이라는 모빌 작품이다. 진솔 작가와는 보통의 엘디프 계약이 그렇듯이 포스터나 액자와 같은 에디션 계약으로 인연을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모빌 작품을 업로드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업로드 된 사진 자체가 예뻐서 모빌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어 팔자고 제안하면서 인연이 연장되었다. 시간이 흘러 '엘디프 더굿즈'라는 굿즈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고 진솔의 모빌과 같이 아티스트들이 직접 만드는 인테리어 오브제를 판매하게 되면서 인연에 힘이 더해졌다. 진솔의 모빌은 화려한 듯 조용한 그 무언가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복잡한 마음이 들다가도 진솔의 곡선과 도형이 아찔하게 중심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그것이 예기치 못한 바람에 흔들려 주기까지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눈 가득 담은 아름다움이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개운한 충족감이 올라온다. 이지적인 굴곡와 단정한 팬던트에 홀려 그녀의 인터뷰를 읽는다. 퇴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 어떤 타인에게 시각적 완성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안한 퇴사, 흔들리는 도형, 그런 것들이 아름다움이라는 역에 다다르기는 참 힘든데 말이다.


작업 노트 - Waterdrop, Height 28cm, Stainless and Acrylic

7살 때부터 그림을 손에서 뗀 적이 없었어요.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그림은 제 인생에서 늘 함께 해왔어요. 하지만, 대학입시 전 안정적으로 돈을 벌려면 작가보단 디자이너가 낫지 않을까 란 생각에 의상디자인과에 들어갔고, 대기업에서 일했었어요. 하지만 일을 할수록 옷보다는 회화나 조형 다른 요소로 작업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고, 돈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더 중요하더라구요. 틈틈이 퇴근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야근이나 바쁜 시즌에 그림을 못 그리는 시기가 오면 너무 힘들고 우울했어요. 그래서, 퇴사 후 본격적으로 개인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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