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이야.... 덕업일치 두 달 만에 왔네 또. 아하하하ㅏㅎ하하ㅏ하하하핳...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지만 나만 이렇게 오랜만에 온 걸 새삼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슬픔! ㅎㅎ 그동안은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를 준비하느라 6월 초부터 엘디프 오리지널 작가님들 세 분 모시고 인터뷰 하고, 7월 초까지는 열심히 탈고하느라 고생이 많았지 내가. 그 일정 마치고 돌아오니까 이제 7월 중순이네. 덕업일치 그동안 뭐 썼나 기억도 안난다 얘.
그래도 훑어보니까, '내 인생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싶은 사건들 중 TOP5 안에 들어갈 만한 사건이 터진 후의 사업 운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타이밍이구나. 우리 모두를 공포와 마스크로 밀어넣었던 바로 그 사건, 코로나19 시기로 돌아가쟈!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20
코로나19
자랑할 수 없는 매출
2020년 1월부터 소식이 들려오더니 2월에는 좀비월드가 되었던 그 때. 모든 나라와 이웃들이 힘들어하고 있었지. 너무 강력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 같았어. 나도 여기저기 약국에 다 들러서 마스크를 마구마구 사와서는 엄마아빠한테 택배 보냈던 기억이 나. 마스크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나는 어린이용 마스크 몇 개를 겨우 구해서 끼고 다녔었어.
세상이 멈춘 듯 하더니 전 세계가 유동성을 마구 풀었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지. 모두의 호주머니에 10만원, 30만원 돈이 들어갔어. 아무도 밖에 나갈 수 없었기에 넷플릭스와 메타의 주가가 치솟았어. 그리고 또 어디가 수혜를 입었게?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시장, 미술과 인테리어 시장이었어.
갑자기 주문이 2배, 3배 들어오기 시작했어. 늘 주문을 처리하느라 정신 없었지. 그만큼 고객 클레임도 늘어났고. 하지만 기분이 좋았어. 돈 버는 즐거움이 이런 건가 싶었다. 매출은 눈에 띄게 껑충 올라갔어. 하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었지. 다른 산업군은 고통 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라디오스타에 누군가 나와서 했던 말이 되게 인상 깊어서 멍하니 있다가도 그 말을 되새겨. "아무도 나를 모르는 데 부자이고 싶다." 크~ 나도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부자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미래가 오는 것 같았어.
버블이 버블인 줄 모르고
사람이 한 번 상승곡선을 타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 특히 나 같은 소심쟁이들은 더욱! 코로나의 여파가 모두 사라진 지금은 보이는 것들이 그 때는 보이지 않았어. 근데 솔직히 상승곡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짧은 출렁임이긴 하지만 그런 하찮은 변동성에도 나란 사람의 눈이 가려지더라고.
그 때는 이 호황기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 오히려 이 호황기를 발판으로 기초를 탄탄하게 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 사업이 잘 되는 것도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꾸준히 준비해왔으니 호황을 누릴 기회도 잡을 수 있었던 건 맞지만, 유동성이 풍부해진 것은 내 노력이 아니었잖아?
돈이 벌리니 모든 비용이 좀 방만하게 쓰여졌지. 월급도 많이 올렸고, 직원도 채용했고, 복리후생비 개념의 식비도 펑펑 쓰고. 그릇이 작다보니 넘치는 물도 많았어. 자신감도 탱천했지! 늘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해서 불편했지만 마음은 참 좋았어.
여기저기서 콜라보레이션 제안도 들어왔지. 많은 사업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원래 온라인베이스였던 우리 엘디프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어. 대기업이 새로 론칭하는 플랫폼에 좋은 조건으로 입점할 수 있다든지, 대기업이 인테리어 제품을 고민할 때 우리 작가들 작품으로 아이디어 상품을 제작한다든지, 고객들에게 배포할 홍보용 기념품을 우리 작가들 그림으로 제작한다든지 하는, 엘디프를 창업하면서 '이런 일도 가능하겠다!' 싶었던 일들 말야.
예방적 성향 = 생존
예비비 항목 신설
정확한 명칭은 아니지만, 그 당시 벌어들이는 돈 중 일부를 예비비 항목으로 따로 편성해 놨었어. 이 돈을 모아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말야. 씀씀이가 늘어났지만 그렇게 해도 남는 돈들은 굳이 임직원 월급을 올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았던 거지. 내가 그렇게 돈을 쌓아가는 결정을 할 때 '어차피 또 벌릴건데 굳이 그렇게 모아야하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 그런데 나는 돈이 어느 정도는 쌓여 있어야 우리가 더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강행했지.
지금도 그렇지만,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음에도 시간에 쫓겨서 대충하는 부분이 생기는 게 싫었어. 스스로에 비판적인 나도 엘디프는 일 잘 하는 편이라고 부끄럼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 처리 속도나 정확도 측면에서 우수한 회사는 맞아. 그렇지만 더 나은 기획, 더 촘촘한 진행, 클라이언트가 더 만족하는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이 가능하길 바랐던 것 같아.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이 오지 않더라고. 내가 기준이 아주 높은 편이긴 했지만, 내 높은 기준이 인정하는 정도까지 와야 다른 사람도 만족할 것 같았거든. 예비비를 모아놓으면 인력을 더 쓰든 용역을 더 쓰든 해서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잖아?
불경기 긴급 자금
그렇게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모아둔 예비비는 연준의 금리 인상(빅빅빅자이언트빅빅스텝)과 함께 시장에서 씨가 말라버린 유동성이라는 결과를 가져와주었지. 이 때 경기가 얼마나 힘들었냐면 나는 이 때 경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이제 웬만한 경제 뉴스는 다 이해가 갈 정도가 되어 주식으로 버는 돈이 엘디프로 버는 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어.
그렇게나 어려웠던 시절을 버티게 해준 건 바로 '예비비'였어. 매출이 슬슬 줄면서 그동안 채워놨던 곳간을 야금야금 빼서 썼지. 더 큰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모아 놓은 돈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은 씁쓸했지만 '그래도 모아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 그렇게 매출이 줄면서 예비비도 줄고, 우리의 씀씀이도 줄고, 콜라보레이션도 줄고, 자신감도 줄었고.... 늘어나는 게 몇 가지 있었다면, 고민과 주름, 그리고 흰머리 정도?
그렇게 202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우하향'이 2024년에는 V자 반등하기를 바랐어.
서성호 - 다이빙
덕업일치 Issue No.20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서성호 작가의 <다이빙>이다. 서성호 작가와의 인연은 상당히 길다. 첫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서의 찾아 계약 날짜를 보니 2018년 2월 즈음에 계약을 했나보다. 아니 이 때는 엘디프가 개인사업자였을 땐데, 정말 말도 안되는 쪼렙이었던 엘디프와 어떻게 함께 해주게 되신 건지 의아할 따름이다. 서성호 작가 역시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표지작 <다이빙>은 물론이고 영화 비긴어게인, 영화 레옹 등의 주요 장면을 그린 것이 인상적이어서 계약을 요청드렸었다. 특히 작은 오브제를 패턴으로 그린 작품들이 아주 좋아보였다. 정리에 중독된 자라서 패턴적인 그림이 좋아보였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여러 콜렉터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여름이 되면 서성호의 <다이빙>과 <프리다이빙>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엘디프에게 상당 기간 마케팅 자문을 제공해주었던 엘레멘트(LMNT) 최장순 대표님도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의 타일 부분이 모눈종이와 같아서, 모눈종이를 좋아하는 본인의 성향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 분의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의 표지에도 모눈종이 패턴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셨었다.
그런데 오늘 이 작품을 표지로 선정한 것은 서성호 작가 특유의 정갈함 때문이 아니다. 물 속에 뛰어들기 위해 잠깐의 점프를 하여 붕 떠있는 모습이 우리의 코로나 시절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이빙의 목적은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 속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충분히 깊이 들어가기 위해 점프를 뛴다. 더 높은 점프를 뛸 수록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기에 다이빙의 시작인 점프 단계는 아주 중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덕업일치를 쓰면서 약간의 점프가 있었던 2020~2022년이 우리를 깊은 물 속으로 제대로 끌고 간 것 같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움직임도 어렵고, 호흡도 제한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 속으로. 그런데 다이빙이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듯, 어쩌면 사업이라는 것도 경제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이빙이 반복될 수록 경제와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체득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다이빙을 반복할 수록 다이빙을 더 잘 해진다는 것도 깨닫게 되겠지. 2025년이 되어서야 되돌아보는 2020년대 초반은 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얻기 위한 다이빙의 도입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 속을 뽀글뽀글 돌아다니면서 강한 폐활량을 갖게 되었고, 조금의 호흡으로 오래 생존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변태같지만, 다이빙이 재밌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미쳐가나보다.
작품 정보 - 다이빙, 40ⅹ40cm, Digital Drawin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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