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감사한 피부과 덕분에 2주만에 덕업일치를 다시 켤 수 있게 되었어! 아무도 읽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쓰는 나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하지 않니? 애초에 내 사심으로 시작한 글쓰기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은 하여간 계속 끌고 가보겠어.
저번 편에서는 고등학교 선배님이 합류하면서 엘디프 법인을 세우게 된 이야기를 했지. 그때가 2018년 여름~가을이었으니 우리가 경험했던 폭염 중 가장 사악한 더위가 있던 한 해였고, 선배님과 나는 '살면서 그 누구와도 이렇게 싸워본 적 없다!'는 말을 서로에게 하면서 언성을 높여가느라 더 더웠던 해였지. 그래서 싸웠던 이야기를 더 쓰려고 했는데, 너무 일상적으로 싸워서 끝마칠 수가 없겠더라고? 오늘은 손톱보다 더 작은 규모의 우리 엘디프가 어떻게 명맥을 이어왔는지, 특출난 장기도 없는 양벼락이가 어떻게 돈을 끌어왔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해. 더 정확히는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이야기야.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16
내가 잘하는 거=문서
어릴 때부터 나는 문서를 잘 썼다.
문서 작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초등학교 5~6학년 때 쯤에 했던 숙제가 생각나.
그 당시에는 486, 586(들어는 봤나 펜티엄) 이런 컴퓨터들이 있던 때였어. 요즘 우리가 쓰는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이 그때부터인가 보급이 됐었어. 기억은 나니? ADSL, 메가패스(=는 신화 에릭의 '내가팼어') 이런거?? 모뎀으로 전화 걸면서 인터넷 하던 시절에서 광케이블로 넘어가던 혁명적인 시기였지. 무선 와이파이가 아무 곳에서나 20개씩 잡히는 요즘 시대에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신기했지? 특히 내가 살던 동네는 부모님들이 얼리어답터인 경우가 많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벽돌 핸드폰 출시하자마자 사는 초초초얼리어답터+우리 아빠는 정말 필요해서 뭘 살거면 그 시점에서 최고가에 최신인 걸로 사라는 큰손(?)이셨기 때문에 우리집에는 늘 컴퓨터와 인터넷이 최신 사양이었어.
아 다시 숙제로 돌아가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신거야. 어느 유적지에 대해서 조사해서 정리해오라. 그 때는 이미지 다운 받고 그런 게 되게 어려웠다. 근데 그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다운받아서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열심히 타이핑해서 줄 맞추고 글씨체 맞추면서 나 스스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문서를 완성해서 제출했거든. 프린트아웃을 한 후에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이거 좀 보세요, 나 쫌 잘하는 것 같죠?' 했던 기억도 있어.
양꼰대 가라사대, 모든 경험은 자양분이 된다.
그 문서 잘 쓰는 능력으로 대학도 갔다고 봐야 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친구 따라 공부하기 시작한 나는(덕업일치 14편 참조해줘) 뒤늦은 학업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내가 '한글'로 스스로 정리하고 프린트아웃 한 자료들을 3공 펀치로 구멍내서 이따만한 파일에다 철 해놓으면서 진도를 따라잡았어. (특히 언어영역 문학 자료는 우리 엄마가 내 딸인데도 놀랍다 하고 감탄할 정도로 잘 정리해 놨었어.)
대학 가서도 웬만한 리포트는 잘 썼겠지? 맞아 나 학점 꽤 괜찮았어 ㅎㅎㅎ (나만 공부하고 아무도 공부 안 해서이기도 함ㅋㅋㅋ) 리포트를 잘 쓰니 제안서나 발표자료 같은 것도 최상위권은 아니더라도 나름 잘 썼겠지? 발표하는 것도 아주 좋아해서 조별과제 맡으면 그냥 '제가 발표할게요~' 하고 시작했고 내가 있는 조별과제는 무조건 A+이었어.
나름 첫 직장이라고 할 만한 곳은 경희대 문화홍보처였는데, 입사하고 보니 문서 쓸 일이 많았네? 기안 올려, 기획서 올려, 메일 써, 홍보자료 써... 계약직 직원이라 기대 안하고 뽑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일 잘 한다는 소리를 안 들을 수 없었던 거 같아. 계약기간 마치고 첫 정규직 직원으로 들어간 '평택시국제교류재단'에서도 문서와 기획이 일이었지. 창업 직전 마지막으로 다닌 '한국지식재산전략원'(지금은 한국특허전략원?)에서는 특허청 산하 기관이다보니 그야말로 문서력이 있냐 없냐를 엄청 중요시 여기는 회사였어. 입사하자마자 엔터 하나, 스페이스바 하나 어떻게 쓰는건지 교육이 있을 정도였지. 이 마지막 회사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것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는가 깨닫게 해주어서 괴로움도 많이 주었지만, 내 문서 스킬이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게 담금질 해준 고마운 곳이기도 해.
그렇게 평생을 문서 잘 쓰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창업 후에도 문서로 승부 보는 사람이 되었지. 좋든 싫든 모든 경험이 자양분이 된다는 으르신들 말씀은 맞는 거였어. 엣헴 양꼰대 나가신다~!
문서=돈
장기를 살려 돈을 끌어오다.
덕업일치 4편에 적은 내용이긴 하지만, 우리 엘디프는 융자도 투자도 없이 여태까지 운영하고 있어. 특히 상품을 판매하는 데 있어서는 무조건 마진이 남는 구조로 운영했기 때문에 소규모이지만 재고를 미리 확보하느라 무리하지 않을 수 있었지. (그게 지금의 경기 불황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해.)
그런데 자체적인 전시를 개최하고, 국내를 넘어서 해외까지 박람회에 참여하러 가고, 해외 플랫폼을 개발하고(지금은 여기 죽기 일보 직전임), 홍보물품을 만들어서 뿌리고, 이런 것들까지 커버칠 정도로 마진율이 좋지는 않아.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예술공정거래라는 창업 철학을 가지고 시작했고, 아티스트에게 비교적 높은 저작권료를 배분해서 예술생태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롯데타워에서 전시를 개최했느냐, 어떻게 2019년 2022년에 런던에 가서 K-ART를 홍보하고 돌아올 수 있었느냐, 어떻게 해외 결제 시스템까지 갖춘 플랫폼을 열었느냐, 모두 정부지원사업 덕택이지. 그리고 그 정부지원사업은 '서류와 발표'로 승부보는 곳이기 때문이지.
라떼는 말야, 지원사업 황금기라는 게 있었다.
창업 철학과 사업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소소한 매출이 뒷받침되니까 이 문서력이 폭발을 하기 시작했어. 쓰는 족족 합격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었지. 한 기관에서 연속 4년을 지원받기도 하고, 다른 기관에 지원을 해도 나름대로 잘 합격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매해 5천만원에서 1억 5천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어마어마한 돈이지?
상품 판매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지원금을 통해 하면서 많은 작가님들을 더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과감하게 진행했어. 그에 따라 엘디프의 매출도 커져 갔고, 처음으로 '채용'이라는 걸 하기도 했어. 나는 엘디프가 순항하는 동안 쌍둥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속에서 (일을 많이 하지 못해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며 지냈어.
근데 '황금기'라는 단어는 언제 빛을 발하게? 침체기 혹은 암흑기가 왔을 때지.
서유영 - 몽유도원
덕업일치 Issue No.16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서유영 작가의 <몽유도원>이다. 서유영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처음 본 날 '아니 내가 아직 이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니!'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정중하지만 돌려 말하지 않는 당당한 메일도 기억난다. 어떤 사람일지 무척이나 궁금했고, 창업 초기에는 으레 계약을 대면으로 진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서유영 작가를 강남 교보문고 언저리의 깔끔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왜 멋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굳건한 느낌의, 친해지고 싶은 언니 느낌이었달까. 계약을 마친 후 작품 노트를 읽다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았다. 오늘도 글을 다 쓴 후에 어떤 작품으로 커버를 만들어볼까 엘디프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황금기'라는 단어에 꽂혀 '몽유도원'이라는 작품을 선정했다. 내가 가장 나답게 살고 있을 때 좋은 일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것 같다. (마침 지금 서유영 작가님과 디엠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차이기도 하다.) 정말 이 작품을 선정해도 괜찮을지 작가의 작업 노트를 다시 찾아 보았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황홀한 풍경의 낙원을 거니는 꿈을 꾸고 난 후, 안견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어 탄생한 것이 ‘꿈 속에서 노닐던 복숭아꽃 동산을 그린 그림’인 <몽유도원도>이다. 1년동안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접했던 나의 자유분방하고 황홀했던 20대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지만, 캔버스 위에 그 찬란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자유로이 표현하며 그리워해 본다."
나 아직 감 죽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래, 나한테도 "내가 제일 잘나가~!"하며 종횡무진하던 황금기가 있었지. 그 황금기를 되돌아보는 지금은 빛바랜 것은 아닌가 잠시 고민해보지만, 빛이 바랜 것이 아니라 멋진 빈티지가 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작품 정보 - 몽유도원, 72.7ⅹ90.9(cm), Acrylic on Canva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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