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내가 피부과 가는 날만 덕업일치를 쓰거든? (원래는 더 자주 쓰고 싶지만... 나란 닝겐 그런 부지런함 따윈 없다) 피부과 가는 날이 딱 3주 만에 돌아왔고! 원래는 덕업일치를 2주에 한 번 쓰려는 계획이었지만 피부과가 3주 만에 예약이 잡힌 걸 어쩌겠어? 히히. 그래도 피부관리 마치고 스타벅스 리저브에 앉아서 덕업일치를 쓰면서 '난 디지탈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어 +_+'라고 스스로 만족하는 이 루틴을 정말 사랑해. 주 1회로 피부과 일정(은 덕업일치 쓰는 일정)을 당겨볼 수 있으면 좋겠네.
저번 13편에서는 온라인 판매를 위한 나의 노가다 스토리와 네이버에게 얄짤없이 들킨 어뷰징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어. 나는 그렇게 약 3~4개월을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앞날이 보이지 않는 자영업자의 삶을 살았지. (아 물론 지금도 그렇게 앞날이 보이는 건 아니....) 그런데 더 부지런해도 모자랄 판에 하필이면 나의 고질적인 병, 게으름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어.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삶이다 보니 늦게 일어나면 사무실에 안 가는 날도 생기고(주문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나간 날이 더 많...) 늦게 출근하면 늦게까지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야근하다가 그 다음 날 더더더 늦게 일어나서 하루를 망치기도 했어. 나는 누군가 열심히 하면 그 누구한테 무임승차해서 나도 열심히 하는 사람(타성에 젖은 닝겐)이라 그 때부터 절실한 소망이 생겼어. 나랑 같이 일할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엄청 부지런한 사람이면 좋겠다...... (+ 그리고 그자가 디자이너였으면 좋겠다...)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14
수석 입학한 엄친딸에게 얹혀가다보니
공부보다는 노는 게 좋았던 고딩, 양벼락
나는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까지 쭈욱 대전의 한 동네에서 다녔어. 그 동네는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들이 많아서 학구열이 있는 편이었지만 음악, 미술, 그 밖의 여러 특별 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어.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공부도 잘 하면서 바이올린 대회도 나가고, 수영 선수 생활도 하기도 했었어. (당연히 그게 나는 아니었음ㅋㅋㅋㅋ)
동네 분위기가 그래서였던 것 같아.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나름 대전에서는 공부를 좀 한다는 축에 속했는데(이번에도 당연히 나는 아니었음), 그 와중에 클럽활동(80년대생들아 기억나니? CA?)도 엄청 활발한 학교였어. 노는 거 좋아하는 나는 늘 공부보다는 클럽활동에 진심이었어 ㅋㅋㅋ 중학생 때는 방송반을 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학년에는 패션동아리(푸하하하 내가???)랑 사물놀이반을 했었어(사물놀이는 꽤 열심히 했어). 우리 부모님도 내가 그런 클럽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굉장히 기뻐하시면서 즐겁게 해보라고 격려해주셨고 동아리 회식(?) 같은 게 있으면 회식비로 한 턱 쏘시기도 하셨어.
친구따라 강남 간 사람 나야나!
그런데 우리 학년 수석으로 입학한 내 절친이 학년 말 즈음에 나보고 연극반을 같이 해보자고 하는거야. 걔는 공부도 잘하면서 피켜스케이팅이라는 특기도 있어서 대전 체전도 나가는 애였는데 심지어 연극반에서 부장(말하자면 대빵)이었어. 완전 엄친딸도 이런 엄친딸이 없다? 그 친구가 피겨스케이팅 대회 나갈 때 나도 구경 간 덕에 대전에 경기 뛰러 온 초등학생 김연아(그래 바로 그 연느!!!)도 그 때 지근거리에서 보기도 했어. (그 때 내 친구가 연느를 보면서 '쟤 엄청 잘해, 나중에 정말 잘 될거야'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
아무튼 공부도 잘 하면서 피겨스케이팅도 하는 애가 연극반도 재밌게 하니까 연극반 이거는 무조건 재밌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친구 덕분에 나도 공부라는 걸 고1 때 처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엄마미안) 우리 부모님도 그 친구를 정말 좋아했어. 중3 때 '나 이러다가 실업계 갈 수도 있겠다' 걱정하다가 어찌저찌 턱걸이해서 인문계를 간 놈팽이였던 나는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친구가 너무 신기했어. 그런데 그 수석 입학자가 우리반 교실에 있는거 아니게쒀??? 나는 내가 가진 거의 유일한 장점인 사교성을 적극 발휘해서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라고 돌직구를 날렸지. (다행히 그 친구가 나를 밀어내진 않아주어서 우리는 아직도 절친이야 ㅋㅋㅋㅋ)
그 후로 친구 따라 공부하다보니 고1 2학기 정도가 되어서는 나름 반에서 중간까지는 하게 되더라. 연극반을 시작하고 난 후에 이상하게 공부가 더 잘돼서(?) 고2 때는 반에서 무려 2등도 해보고(!?), 수포자였던 내가 수능 막판에 수학을 1등급까지 올렸으니(문과긴 했지만!?) 진짜 이 친구를 만난 그 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사족이 너무 길었지? 그래. 엘디프를 7년 가까이 함께 운영한 나의 동업자는 이 고등학교 연극반에 있었어.
미친 스펙의 선배님이 삼성전자를 때려쳤다. (오예?)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연극반 2년 선배님이자, 공부를 무지하게 잘한다고 소문이 나신 분이면서, 연세대학교 화학과 석박사 과정을 때려치고 홍익대학교에 가셔서 디지털미디어디자인을 공부하시고 무려 삼성전자에 입사하신 후 근속까지 하신 미친 스펙을 자랑하던... (포토샵 무지랭이의 구원자) '디자이너'셨지!!! (그에 비하면 나는 그냥저냥 대학 나오고, 외무고시는 1차도 한 번 못 붙고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면서 이직만 잦은 변덕쟁이였.... 어머 나 진짜 살아온 삶에 비해 너무 계탔다 ㅋㅋㅋ)
연극반은 고3 선배님들이 수능을 마친 후 졸업연극을 하는 문화가 있었어. 고2 선배님들은 곧 고3이 되시기 때문에 졸업연극에 참여하지 않았고, 고1 쪼무래기들이 고3 선배님들의 연극 준비를 돕고 스텝으로 활동하는 시스템이었어. 말했다시피 나는 고1 겨울 방학 때 엄친딸 친구 덕에 연극반에 들어갔고 이 졸업 연극을 시작으로 연극반 생활을 개시한거야. 당시 연극반 선배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후학 양성(?)을 위해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전광역시 연극제'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후배들을 격려해주는 문화가 있었거든.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고2, 고3 때도 선배님들을 계속 만나게 되면서 대학을 가서도 연극반 모임이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대학 1~2학년 때까지는 선배님들과의 교류가 있던 편이었어.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극반 사람들은 으른이 되어 갔고 각자 바쁜 일정으로 인해 그 관계가 좀 느슨해졌어. 그래도 싸이월드(내 나이 무엇)를 필두로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 놀라웁게 발전하면서 10년 후에도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있을 정도로 살았던 거 같아.
그런데 어느날 인스타를 보니, 그가 삼성전자를 때려쳤더라?
임지민 - 초록향기
덕업일치 Issue No.14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임지민 작가의 <초록향기>이다. 2017년 봄에 열린 브리즈아트페어에서 임지민 작가를 처음 면대면으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임지민 작가는 '크롭페인팅'이라는 본인만의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삶 속에서 편린으로 남아있는 기억을 캔버스에 옮기던 중이었는지 캔버스 안에 그려진 그녀의 인물들은 얼굴이 잘려있거나 손만 나와 있는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무서울 수도 있는 설정이었고 슬픔이 느껴지는 색채였지만 미묘하게 읽히는 따뜻한 감정이 있는 작품들로 기억한다. 임지민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귀여움과 따뜻함이 있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이 엘디프라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 삶에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이 작가의 소품을 사는 버릇이 생겼다. 이 작품이 그 첫 버릇이다.
임지민을 덕질한지 8년이 넘어가고, 이제는 서로 반말도 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된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그 '어쩐 일'은 과거를 지나간 객체로 두지 않고, 늘 현재처럼 기억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이 그림에 담겨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작업에서 다루는 과거(기억)은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본다’ 가 아닌 ‘과거가 현재에 도착한다’라는 말에 더 부합한다."라는 그녀의 작업노트가 오늘 덕업일치를 쓰고 나니 또 새롬게 읽힌다. 엘디프라는 나의 현재는 과거에 만났던 작은 인연들이 여태까지 도착해주는 덕분에 팅통탱통 신나게 굴러가고 있는 연유에서겠다. 지금이라는 기억의 파편도 미래의 현재까지 나와 함께 같이 도착하여 주겠지. 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양벼락이라는 경직된 인간이 '현재를 과거처럼, 과거를 현재처럼' 살 수 있게 해주는 임지민의 그림이 오늘은 더 좋아진다.
이러다 조만간에 또 임지민 그림 사게 생겼네, 젠장.
작품 정보 - 초록향기, 25x25cm, Oil on pap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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