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나.... 덕업일치에 거의 3개월 만에 왔네? 벼락치기의 전제는 미루기라고들 하지. 양벼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열심히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은 도저히 미룰 수 없어서 덕업일치를 펼쳐본다. 사실 놀지 않았어. 덕터뷰 신규 기획도 하고, 엘디프 오리지널도 론칭하고, 지금도 2025년 상품 준비하고 있고, 홈페이지도 개편 중이야. 놀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덕업일치 손 놓은 건 맞아 히히히히히히 나 잊지 않았지?
저번 10편 오랜만에 펼쳐보니까, 이번엔 사무실 찾는 이야기를 해야되겠구나! 100만원 들고 시작한 개인사업자 양벼락이의 첫 사무실은 무려 판교 노른자 땅에 있었다는 사실!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11
무려 판교!
나에게 판교는 미국 같은 곳이었다
결혼 전에 부모님께서 발령을 받으시는 바람에 용인에 살기 시작했어. 전 남친(현 남편)은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데이트는 주로 분당에서 했었어. 데이트라고 해봐야 분당 정자동에 있는 스타벅스들(잘 있니 그 당시 SK CNC 앞 스타벅스야?)에서 나는 논문 쓰고 남편은 코딩하는 것으로 갈음했던 정도였지만 말야.
당시 남편은 창업한지 얼마 안돼서 정말 돈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박봉이어도 나름 대학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석사 과정을 병행했기 때문에 그나마 밥이라도 먹는 데이트가 가능했던 거 같아 ㅋㅋㅋㅋ 아무튼 우리가 분당, 판교 맛집들을 하나하나 섭렵해나가던 시기에 판교테크노밸리에서 파는 스테이크동을 먹기 위해 판교를 간 적이 있었는데, 오 이게 바로 별천지구나! 미래도시다! 했던 기억이 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운동화에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아주 생경했던 것 같아. 그곳을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되게 프리한 미국 IT 기업 사람들 같아 보이기까지 했어. 막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 있잖아.
그 당시, 나는 내 운명에 창업이란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냥 판교는 삐까뻔쩍한 한국의 실리콘밸리, 멋있는 곳, 후드티 입는 사람들이 많은 곳, 말하자면 최첨단 관광지였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 창업 전에 대학교, 시청 산하 기관, 준공공기관 같은 공공성 그득한 곳에서 일했다는 거 말했었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지원사업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던 (심지어 그런 지원사업을 담당해서 지원금을 지급해주기도 했던) 사람이었지 뭐야. 물론 '창업 지원' 쪽은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있는지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 내 주변에 창업한 사람이 하나 있긴 했는데(전 남친=현 남편) 그는 지원 사업이라고는 일절 알지 못하는 자였고, 내가 행정지원을 했던 지원사업들은 다 월드클라스 몇백, 강소기업 어쩌구 하던 잘 나가는 회사들이었거든.
몇몇 창업 관련 기관을 찾게 되어서 그 기관의 지난 공지들을 다 읽어보았지.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더라고? 대한민국 만세다!를 외치며 공간지원은 어떤 것이 있는지 면밀히 찾아보았어.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제공하는 '경기콘텐츠코리아랩'이라는 창업시설이었어. 와, 판교 노른자 땅에 위치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곳 6층에 사무실을 제공해 준다는 거야. 심지어 무상으로;;;
시도하지 않을 이유 없잖아? 바로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어.
세상에 나 처음에 집에서 이렇게 일했었다규...?
창업하기 좋은 경기도
도브그레이에서 엘디프로 변신!
사무실을 찾던 그 시기에 '엘디프'라는 개인사업자를 준비하고 있었어. 지난 편에서 말한 것처럼 내 첫 사업자는 '도브그레이'야. 포토샵도 못하는 주제에 유튜브 보며 포스터 디자인을 하고, 인쇄소를 찾아 인쇄하고, 액자 공장을 찾아 프레임을 도매가로 구매해서 직접 표구하고, 박스도 이만큼 사서 집에 처박아놓고 주문 들어올 때마다 포장하고 내보내고 했던 삽질정신이 가득 담겨있지. 한참 하다 보니 이제 아티스트랑 할 만큼 역량이 쌓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도브그레이도 열심히 삽질하느라 힘들었으니까 감히 폐업은 하지 못하겠고(얼마나 개삽질을 했는지 한~참 후에 '엘디프 홈'으로 개명해서 아직도 살아있음), 그러나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니 사업자를 새로 내야겠다고 결심했지.
그 쯤해서 내 친동생이 엘디프라는 이름을 지어줬어. Look DIFFerently 라는 의미의 L'DIFF 라는 이름을 제안하는데, 의미도 소리도 딱 듣자마자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 게다가 동생이 로고도 만들어줬는데 도장으로 찍어낸 듯 각 잡힌 모양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나 각 잡는 거에 조금 꽂혀있음)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렇게 엘디프 개인사업자를 내고, 명함도 휘뚜루마뚜루 만들어서는 <2017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라는 곳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어. 마음에 드는 멋진 그림 그리는 작가님이다 싶으면 무작정 작가님 부스 앞에 서서 "저 이런 사업 하는데 작가님 이메일로 저희 회사소개서 보내고 함께 하실지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물었지. 그렇게 대여섯 작가님께서 엘디프의 시작을 함께 해주시기로 하셨어. 전희성 작가님, 유지언 작가님, 임현ㅇ 작가님, 이나ㅇ 작가님, 명하ㅇ 작가님, (서일페에서 만난 건 아니고 이미 알고 지냈던 내 대학 동기 부부가 운영하는) 시즈닝그라피와 계약이 진행되었지.
(쩌리 엘디프의 시작을 함께 해주신 여섯 분의 작가님 중 세 분의 작가님이 아직도 엘디프와 함께 하고 계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서일페라는 곳에 무려 '바이어'라는 이름의 명찰을 달고 다니니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 ㅎㅎㅎㅎ 지금은 너무 당연하고 시시한 것들이 저 당시엔 모두 새롭고 신나는 일들이었어.
사업계획서, 지원서, 증빙서류
내가 사무실을 구할 때 기관에서 요청했던 세 가지야. 어떤 사업을 할 것이고 얼마나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정리한 사업계획서와 '그래서 제게 사무실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신청서. 마지막으로 여태까지 해온 것에 대한 증빙서류들. 증빙서류라고 해봐야 사업자등록증이 있으면 내시오, 매출내역이 있으면 내시오, 하는 정도의 것이었어.
덕업일치 11편이 되어서야 말하는 거지만, 나 꽤나 문서매니아거든. 행/열 딱딱 맞게 문서 작성하고 내 주장 뒷받침하는 자료 예쁘게 잘라 넣어서 다꾸 아닌 문꾸(문서 꾸미기!)하는 재미로 회사 생활 했던 사람이었어. 사무실을 갖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첫 지원서를 얼마나 예쁘게 작성했나 몰라.
잠깐 여기서 지원사업 지원서 쓰는 팁 하나 주자면, 그 시기에 창업 씬에서 많이 쓰는 용어를 알아내서 내 사업에 적용하는 게 좋아. 예를 들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업 씬에 넘쳐났던 '여러 유저를 한 사이트에 모아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면 '플랫폼' 혹은 '마켓플레이스', '커머스'이런 말을 활용하는거야. 코로나 때는 블록체인, 메타버스가 하도 유행이어서 그런 말을 쓰지 않으면 지원서가 작성이 안될 정도였어(물론 나는 블록체인, 메타버스는 전혀 모르고 있어서 그 당시 그런 단어들은 양심상 못 썼어) 요즘은 생성형 AI가 대세인 것 같더라?
사무실 얻기 직전 사진이야. 액자 모서리를 보호해주는 코너지 만 장을 집으로 시켰는데.. 만 장이 얼마나 큰 부피인지 몰랐어. 저 큰 것들이 집으로 와버렸지 뭐야..?
서류 통과하면 발표 심사!
어느 날 메일이 날아왔는데, 뭐야뭐야! 나 서류 합격했다잖아! 발표자료는 언제까지 내세요, 몇 날 며칠 몇 시에 여기로 오세요, 안 오면 탈락입니다, 시간 조정 불가! 이런 메일이 날아온 후에 나는 바로 발표자료 준비에 들어갔지. '내가 또 왕년에 PPT 좀 잘 꾸며서 교수님들에게 이쁨받았던 경험이 있지 엣헴,'하면서 오랜만에 PPT를 열었는데 세상에 PPT가 이렇게 어려운 문서 툴인줄 나는 몰랐네. (졸업한지 너무 오래된 건 아니고?) 이미지도 넣고 영상도 넣고 낑낑 거리면서 발표자료를 준비했어.
얼마 전 에스파 윈터가(나 에스파 좋아함) 빠더너스 나와서(문쌤도 좋아함) 이런 말을 하더라고. "나는 준비가 안 된 상태를 싫어한다. 준비가 되었나 안 되었나 스스로 가늠하는 것도 싫어한다.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생각을 안 할 정도까지 연습을 해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쁜 애가 생각도 강인해서 윈터가 더 좋아졌자나. 내가 바로 저런 인간 중에 하나라서 극공감하기도 했어. 사무실을 얻기 위한 첫 발표 역시 그랬지. 밤이 새도록 모든 장표와 모든 대사를 다 외우고, 틀린 부분을 안 틀리게 수 십 번 반복 연습하고, 심사 장소까지 버스 타고 가면서도 계속 대사를 외우면서 가고, 내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무한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기다리다가 문 열자마자 씨익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마이크 들고 한숨 크게 내쉰 후 "안녕하세요. 엘디프 대표, 양보라 입니다.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를 내뱉으면 벼락치기 한 정보들이 뇌에서 입으로 흘러나오다가 발표가 끝나지.
질의응답? 그것도 예상 질문을 몇 십 가지 생각해서 나만의 논리를 만들어 가야 마음이 놓여.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면 도저히 잠이 안 와. 그 심사는 더 그랬던 것 같아. 사무실을 정말정말 얻고 싶었거든. 그래서 남편이 보든 말든 혼자 방을 서성이고 중얼중얼 거리면서 답변하는 연기 연습(?)을 많이 한 기억이 나.
여기 박아 놓은 아기아기한 내 얼굴은 발표하러 가는 날 모습인 거 같아! 2017년 8월 8일이래!
아아 맞다, 결국 최종 합격해서 입주 함!
전희성 - 물수제비
덕업일치 Issue No.11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엘디프와 두 번 째로 계약을 체결한 작가이자, 엘디프로서 첫 판매를 개시해주었던 전희성 작가의 <물수제비>라는 작품이다. 전희성 작가를 2017년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 보았으니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나 보다. 그림이라는 것을 거의 처음 보았던 그 때에도, 수 만 장의 작품과 이미지가 딥러닝 되어 스스로 생성형 AI가 될 것만 같은 지금에도 이 그림이 참 예쁘다. 새삼 전희성 작가의 작업 스타일이 명료하게 다가온다. 책도 내고 대기업과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하게 하던 최고의 작가가 어떻게 아무 것도 없는 (지금도 별 것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엘디프와 계약을 맺었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그 계약이 수년이 흘러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더 신기할 수밖에. 충정로 인근 소호정에서 국시 한 그릇 한 후 카페에서 각자 날인을 하며 계약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대면 계약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져서 작가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계약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지금은 누적 계약 작품이 4000점이 넘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40여 점 정도였다. 저 때의 전희성 작가는 어린 아이들을 둘이나 키우고 있어도 대단히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만한 어른이고 지금도 그러한데, 지금의 나는 어린 아이들을 키워야 해서 어른 흉내를 낸다. 첫 사무실이 설레고 벅찼지만, 지금은 본사와 지사로 나뉜 두 개의 사무실을 하나로 합칠 고민을 하니 사치가 충만하다. 오랜만에 궁금해서 들어가 본 작가의 인스타그램이 올해 4월을 마지막 피드로 하고 있다. 작가님, 요즘도 <집으로 출근> 하시는지요? <인생은 즐겁고, 어린이는 귀엽지>는 정말인 것 같습니다.
작품 정보 - 물수제비, Digital Drawing, 2017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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