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어머어머 내 정신 좀 봐. 창업도 벼락치기 시리즈 8월 2일에 써놓고 한 달 넘도록 아무것도 안 썼어 ㅎㅎㅎㅎ 내가 이래... 이래서 이름이 양벼락이야... 약간의 변을 하자면 생리통으로 1주일, 감기로 1주일 너무 아프게 보내버리고 새로운 캐릭터 들고 지방에 출장 다녀오고 새로운 덕업일치 시리즈 기획하고 실행한답시고... 적어놓고 나니 정말 변명이다. 나 혼자만의 만족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더 성의있게 더 성실하게 해볼게!


그래도 쉬는 동안 '써야되는데, 써야되는데!' 하면서 보내다보니 이번에 뭘 적을지 정하긴 했어. 퇴사를 했고, 늘지 않는 롤 실력이지만 한 달 동안 롤을 열심히 해왔다는 이야기까지 했던 것 같아. 퇴사는 2016년에 했고 2017년부터 나의 본격적인 분투가 시작되었는데, 2017년 1월 1일부터 어떤 삽질을 했는지 정리를 해볼까 해. 아 적고나니까 너무 오랜 기간 삽질만 한 것 같아서 좀 부끄럽다.


근데 뭐, 이거 어차피 나만 보는 거 같으니까 뭐, 우헤헤헤헤헤 >_<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10

2017년 상반기, 실험

원래 새해는 희망찬 거니까

놀아줘야지. 1월 3일이 첫 영업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1월 2일까지 알차게 놀 계획이었어. 롤은 끊기로 했기 때문에 아마 미드를 봤을 거 같아.


그래도 1월 1일이랍시고 2017년 대박의 기운을 기원하며 최소한의 것을 해보려고 했어. 정확히 1월 1일에 한 일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인터넷으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 당시에는 스마트스토어 이름이 스토어팜이었어!) 스토어팜을 개설하려다보니 좀 막혔던 기억이 나. 나는 개인사업자만 있으면 스토어팜을 바로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업자 이름으로 찍힌 통장이 필요하고 에스크로 서비스를 가입해야 했나 그런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1월 1일, 2일은 영업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장을 만들 수도, 에스크로 서비스 가입 신청을 할 수도 없었지. 나는 '아~ 새해부터 열일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하며 남은 시간을 열심히 놀아주었어.


1월 3일이 되어서는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고 첫 포스팅을 했어. "안녕하세요, 도브그레이입니다!"


그러고 보니 엘디프 전에 도브그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했었네. "도브그레이는 따뜻하지만 차분하고, 중립적인 동시에 독립적이면서, 어느 곳에서나 어울릴 수 있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오래가는 색이죠-"라는 말로 포스팅을 했더라고(남사시럽다 정말.) 이 도브그레이라는 이름은 내 남동생이 지어준 이름이야. 내가 저작권으로 사업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아티스트랑 일할 노하우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디자인을 해서 인테리어 액자를 팔아보겠다고 말 했더니 이런 이름을 추천해주었어. 비둘기 회색이라고 하면 좀 징그러운 느낌이었지만 영어로 하니까 괜찮은 거 같더라. 색을 찾아보니까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보이지도 않는 색이라서 나는 쏘옥 맘에 들었어. 아직은 작가 작품을 취급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곧 다가올 미래에 아티스트와 일하게 되면 아티스트와 그림을 빛나게 해주는 따뜻하고도 중립적인 배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

무려 도브그레이 인스타에 처음 올렸던 사진. 아 정말... 과거의 나야 왜 그랬니...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사업자금 100만원 중 40만원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간이 콩알 만한 인간이라 사업도 100만원 가지고 시작했어. 남편에게 나 100만원 쓴다! 하고서 내 개인 통장에서 사업자 통장으로 이체를 했지. 인쇄소는 어디로 할지, 액자는 어디서 떼 올지,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 박스는 어디서 살지, 택배는 어떻게 보낼지 밤새 롤 하면서 틈틈이 고민했던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이었어. 여담이지만 그 때 찾았던 인쇄소, 액자 공장이랑은 아직도 거래하고 있어. 초보 주제에 나름 시장 조사를 잘 했었나봐 ㅎㅎ 그렇게 초기 재고를 마련하는 데 40만원 가량을 썼어. 지금이야 한 거래처랑 한 달에 400만원도 넘게 거래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재고를 마련하는 데 40만원이라는 돈이 들었다. 귀엽지?


그러고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가 그림 사업을 시작했으니까 그 동안 간간이 생각났던 그림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어. 내가 어느 시청 산하 재단에서 일할 때 여러 문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지역 축제에서 걸려있던 그림이 생각났어. 그 때는 그림이라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었고 전시도 보러 다니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축제에서 봤던 그림이 기묘하면서도 창의적인 느낌이 들더라고. 근데 그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그 축제에 걸려있던 작품 사진만 있는 거야. 전 직장 사람들과 여전히 친분이 있는 상태여서 그 축제 담당자 연락처 좀 알아봐달라고 하여 그 담당자 분께 작가 이름과 연락처를 여쭤보았어. 그렇게 얻게 된 연락처로 작가님께 문자를 보냈고, 나는 그 작가님의 작품을 샀어. 시간이 흘러 맥주도 같이 마시면서 말도 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어. 지칠 때, 갈 길을 모를 때 그 그림을 보면 이 그림을 콜렉할 때의 충동성이 생각나서 되려 힘이 나더라고.


나머지 20만원은 광고비로 써보겠다고 내버려 두었다가 이미지 스톡 구독료로 사용하게 되었어. 다행히 주문 들어오면 만들면, 팔면 수익이 남는 구조였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나지도 않고 플러스가 되지도 않는 자본 잠식 상태를 한동안 유지하였다. 히히히히히히.

이은아, Depend on I, Acrylic on canvas, 31.8x40.9cm, 2015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유튜브로 포토샵 따라하기

아 그러니까 뭔가 팔기 시작하긴 한 거야. 근데 그게 작가의 작품을 계약해서 파는 형태는 아니었어.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데 계약만 한다고 판매가 되는 건 아니니까 나 혼자서 스토어팜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탐색하면서도, 미술이나 디자인과는 관련 없는 내가? 스스로 인테리어용 그림을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그런 상황?을 펼쳐 놓은 거야. 위에서 써놓은 것처럼, 뭐든 만들어야겠으니까 이미지 스톡 구독하는 데 20만원을 썼어.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찾고, 누끼를 따고, 포토샵으로 디자인을 해서 팔겠다는 야심찬(a.k.a. 대책없는) 계획이었지. 옆에 있는 액자 사진이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이미지야. 저 뾰족한 나뭇잎 누끼 따는데 하루 이상 걸렸었다.


유튜브를 보며 포토샵을 만지기 시작했어.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난생 처음 접했는데 한 사나흘 하니까 팔 만하다 싶은 게 하나 둘 나오더라고. 근데 액자에 넣을 이미지 만드는 게 다가 아니었어. 정말 어려운 건 상세페이지였어............ 상세페이지는 만드는 것도 어렵고, 업로드 하는 것 자체도 너무 신경 쓸 것이 많아서 나는 상품 업로드하는 날만 되면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루를 날려 먹기도 했어. 상세페이지 제작 및 업로드의 가장 큰 문제는 겨우 만들어서 업로드하고 나면 고쳐야 할 것이 보인다는 거, PC버전으로 올렸는데 모바일 버전으로 보면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는 부분이었어. 그 때 만든 상세페이지 아직도 몇 개 살아있는데, 현재 엘디프의 디자이너이자 공동대표님은 그 때 상세페이지 볼 때마다 "포토샵도 못하는게 애썼다" 이러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지금은 포토샵 모든 단축키 다 까먹음. 약은 약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원가, 마진 개념 익히기

작은 규모이지만 재고를 주문해보고, 직접 액자를 만들고, 포장도 해보고 하니까 원가와 마진 개념이 자동으로 습득되더라고. 처음에는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만 원가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하다보니까 부가세, 배송비, 포장비, 내가 들이는 시간에 대한 인건비는 물론이고 반품되었을 경우에 생기는 손실, 재고를 손상되지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기 위한 관리비 등 생각보다 많은 원가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 광고는 엄두도 못 냈지만 광고비까지 결국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한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마진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내가 테스트를 한참 진행하던 시절에는 초저가의 포스터 시장과 프린트베이커리처럼 브랜드 파워가 있는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의 시장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어. 테스트 개념으로 내가 직접 만든 이미지로 액자를 판매하고 있을 때는 나도 '저가' 축에 속하는 가격을 선택하였어. 내가 이름 있는 작가는 아니니까. 그런데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게 되면 '중간 가격'을 선택해야겠다는 결정은 이 때 하게 되었어. 분명히 예술성이 차고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장점을 가져가면서도 나 같은 그알못도 접근 가능한,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가격을 제시하고 싶었거든.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깨달은 것은 한 가지 더 있었어. 저가는 저렴한 원가가, 중간가격은 중간의 원가가, 고가는 비싼 원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가격을 선택하더라도 많이 팔아야 손으로 주무를 만한 이윤이 남는 다는 거였어.

사무 공간 만들기

워낙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보니 사무실을 얻을 엄두가 나지 않았어. 돈도 안 벌렸지만, 혼자서 하다 보니까 집에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거든.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어. 나는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는 점이야.


고등학생 때 집에서 자율 학습을 잘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일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어. 성인이 되니까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이 오히려 더 없더라고. 세상의 단 맛을 봐서 그런 거였을까? 그것 보다는 누구도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철저한 '혼자'여서 그랬던 것 같아. 친구들이 모두 공부를 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집이든 학교든 공부를 하는 것이 가능했던 거였어. 일을 혼자 한다는 건 또 다른 일이더라.


늦잠 자고, 노느라 일 안 하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나름 괜찮은 직장을 때려 치고 나왔는데 고작 이렇게 산다는 게 혐오스럽더라고. 그런 마음이 드는 데도 집에 있으면 계속 누워있게 되고 컴퓨터를 켜도 다른 데로 새게 되고 핸드폰만 계속 하는 습관을 고치기가 힘들었어 그래서 결심했지, 사무실을 찾기로!

이은아 - Depend on I

덕업일치 Issue No.10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처음으로 엘디프 소속 작가가 아닌) 이은아 작가의 <Depend on I>라는 작품이다. 이번 덕업일치의 내용처럼, 이은아 작가와 엘디프는 계약관계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작업노트도 없고, 작가 더 알아보기 버튼에 링크를 걸 수도 없다. 그러나 작가와 나는 엘디프의 전신인 '도브그레이'를 창업했을 때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을 다음으로 미루고 테스트베드로서 시작한 도브그레이의 하찮은 사업자금 중 40%의 지분이 투입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작가가 두어가지 동물을 식물처럼 접붙이기 한 기이한 상상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뇌리에 남아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생각이 났다. 결국 창업한다는 핑계로 나의 첫 콜렉션이 된 이 작품은 늘 나의 공간 어딘가에 자리 잡아서 '너, 지금보다 더 이상한 방향으로 가도 된다'고 말해준다.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잡념과 망상이 현실과 괴리감을 만들 때마다 결국은 그 둘이 접붙이기 되어 엘디프라는 혼종을 만들어냈던 것을 기억하며, 어제도 오늘도 늘어 놓았고 내일도 가지치기를 할 나의 여러 뻘짓들이 결국은 의미를 얻어갈 것을 믿어본다. 


작품 정보 - Depend on I, Acrylic on canvas, 31.8x40.9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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